[이진구기자의 현장체험]세상에 나온 꿈나무 초등학교 1학년

  • 입력 2004년 4월 8일 15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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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파란색 사탕을 좋아했다. 선생님이 선물로 사탕통을 꺼내자 너도 나도 파란색을 달라고 짹짹거린다. 빨간색도, 하얀색도, 노란색도 있건만…. 새로운 아동 심리 현상은 아닐까. 갑자기 흥분이 돼 선생님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게 콜라맛이거든요.”

초등학교 1학년. 엄마 품이라는 달걀을 깨고 학교라는 세상으로 처음 나온 아이들. 그 옛날 코흘리개는 간 곳 없고 한글은 물론이요, 한자에 영어까지 손을 대는 요즘 아이들.

서울 광진구 구남초등학교 1학년 4반에서 그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다.》

○ 철수는 어디로

입학한 지 한 달이 채 못 된 아이들. ‘철수야 놀자’를 생각했건만 이미 한글을 모르는 아이는 없었다.

‘목요일’의 ‘목’자를 어떻게 쓰느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미음, 오, 기역 받침이오”하고 줄줄이 대답이 나온다. 한 똘똘이 스머프는 “나무 목의 목!”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이른바 한국을 휩쓰는 ‘조기 교육’의 힘이다.

컴퓨터는 이미 아이들의 친구가 된 지 오래다. 선생님이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당근송’을 틀어주자 ‘우유송’ ‘스타송’ ‘방귀송’ ‘숫자송’ 등 각종 플래시 음악을 틀어달라는 아이들의 요구가 빗발쳤다.

지식은 늘었을지라도 그래도 애들은 애들이다. 선생님이 메뚜기가 그려진 동화책 표지를 보여주며 “메뚜기가 뭐하고 있죠”라고 묻자 “감기에 걸렸어요”, “사자한테 잡아먹히려고 해요”라며 살짝 동심의 세계를 보여준다.

달랑 메뚜기 한 마리만 있는 그림인데 별것이 다 보이나 보다. ‘어린왕자’의 보아뱀처럼.

선생님이 메뚜기 인형(인형 밑에 손가락을 넣어 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졌다)을 꺼내 움직이며 “자∼인사해야지”라고 말하자 한 녀석이 냉큼 “에이∼선생님 손가락이잖아요”라고 맞받아쳤다.

아이들의 집중력은 3분이 채 되지 않는다. 수시로 돌아보고 장난을 친다. 한 녀석이 뭐가 신기한지 뒤를 돌아보며 내게 ‘씨익∼’하며 웃음을 짓는다.

‘헉! 살인미소다.’ 무슨 로션을 썼을까.

한 녀석은 연신 코를 파고 있다. 친구들이 “저요! 저요!”를 외치는 새 슬쩍 짝꿍 치마에 코딱지를 묻힌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습득하는 대한민국 남자들의 대표적인 아동기 행태다.

○ 동화속 주인공처럼

앞자리 여자애가 손에 뭘 들고 있어 “뭐야?”라고 물었더니 “무독이요”라고 대답한다.

“무독이?”

알고 보니 초등학교 저학년용 접착제의 이름이다. 좀 더 컸으면 “접착제요” 또는 “본드요”라고 했을 텐데 이 시기에는 사물의 상표가 곧 사물인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단다.

품위 있는 자세로 인사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아이들. 이종승기자

입학 한 달 동안은 교과서가 아닌 ‘함께 생활하기’를 배운다. 화장실 가기, 친구와 인사하기, 서로 이름 익히기 같은것 들이다. 학교를 돌아다니며 교실의 위치와 걷는 예절 같은 것도 배운다.

하지만 교육은 ‘조용히 걸어야 해, 뛰면 안 돼’라는 식보다 ‘왕자님, 공주님처럼 걷도록’ 이뤄진다. 어느새 애들은 자기가 만든 왕관을 쓰고 동화 속 왕자와 공주로 변했다.

몇 십분 수업에 몇 분 쉬는 시간일거라 생각했는데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한 번 정도만 쉬는 시간을 가졌다. 대신 화장실을 갈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온다.

수업과 쉬는 시간은 교사가 자율적으로 진행한다는 말.

아이들은 화장실을 ‘쉬하우스’라고 불렀다.

아이들은 수업이 몇 시에 시작하고 몇 시에 끝나는지 모른다. 함께 즐겁게 놀고 배울 뿐이다. 선생님이 “집에 갈 준비해요”라고 말하면 그때가 가는 시간인 줄 안다.

시계를 들여다보며 조금만 늦게 끝내도 아우성을 치는 행태는 중, 고, 대학생으로 갈수록 심해지는 현상이다. 어느 쪽이 초등학생인지….

종료 직전 뒷자리 여자아이를 귀찮게 굴던 남자아이가 선생님에게 혼이 났다. ‘귀찮게 한다’는 것은 이 시기 남자들의 전형적인 애정 표시 방법 중의 하나이다.

“왜 네 짝은 놔두고 ○○에게 귀찮게 구니?”

고개만 떨구고 말을 못하는 녀석. 그래 안다.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사랑하는 죄를….

○빨간구름… 노란구름… 검은구름…

메뚜기에 이어 선생님이 무당벌레 이야기를 시작했다.

“참새를 만난 무당벌레가∼참새에게 물었어요. 참새야, 참새야, 넌 뭘 먹고사니.”

“너 같은 벌레를 먹고 살지.”

뒤에서 듣고 있던 장난꾸러기가 짝꿍에게 속삭였다.

“걸레를 먹고 산대. 우히히.”

이 장난꾸러기는 짝과 함께 왕관을 쓰고 교내를 돌아다니는 시간에도 가만있지 않았다. 가면 안 되는 옥상으로 침투를 시도했던 것. 게다가 자기 짝은 버리고 다른 친구의 짝과 함께 탈출(?)을 감행하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쇼생크 탈출’은 결국 홀로 남은 ‘조강지처’의 밀고로 불과 2분 여 만에 발각돼 수포로 돌아갔다.

구름을 그리는 시간.

빨간 구름, 노란 구름, 검은 구름 등등 색도 가지가지, 네모, 세모, 사선 등 모양도 가지가지다. 선생님이 뭐라고 할지 무척 궁금했다.

“어머! 멋진 저녁노을이네. 구름이 화가 많이 났구나. 곧 비가 오겠네.”

하긴 구름은 하얀색이라고 어느 사전에 써 있던가. 그런데 어느 시기부터 우리는 누가 구름이 ‘빨간색’이라고 하면 웃기 시작했을까.

○ 배울 것은 유치원서 다 배웠다

고작 7, 8살.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을 텐데 신기하게도 수업시간에 조는 아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안 졸리니?”

“수업시간에 자는 거 아니에요.”

선생님에게 받은 사탕을 맛있게 먹던 아이들은 “사탕은 집에 가서 먹어요”라고 선생님이 말하자 급히 다시 뱉어 껍질에 쌌다.

고등학생, 대학생이었다면 들은 척도 안하거나 “뭔 상관이냐”며 대들었을 거다. 선생님을 때리고 신고까지 하는 세상이니 말이다.

도대체 어느 학교에서, 어느 교육과정에서 그런 것을 가르쳤는지.

정말 우리가 배워야할 것은 유치원 때, 초등학교 때 다 배운 것이 아닐까. 거짓말 안하기, 친구와 친하게 지내기, 어른에게 인사하기, 남의 의견도 존중하기 등등….

그 이후로 배우고 익힌 것은 남 딛고 일어서기, 변명하기, 제 눈의 티끌은 안보기 같은 것이 아닐까.

하긴 총선, 대선 선거 포스터에서 후보자들이 고등학교 이상만 밝히는 것을 보면 그들에게도 양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글=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사진=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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