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백형찬/책가방에 짓눌린 아이들의 꿈

  • 입력 2004년 4월 9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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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오전에 강의가 없어 아침 산책에 나섰다. 봄바람이 목련꽃 향기를 품고 부드럽게 불어 왔다. 집 근처에 학교가 많아 그날도 등교하는 학생 여럿이 눈에 들어왔다.

초등학교 2학년 정도의 어린 학생이 힘에 겨운 듯 커다란 가방을 질질 끌며 교문으로 들어섰다. 마치 외국 갈 때 사용하는 여행가방 같았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보니 그런 가방을 든 학생이 적지 않았다.

지나가던 학생 한 명을 불러 세워 가방을 유심히 살펴봤다. 생각했던 것처럼 무척 무거웠다. 무엇이 들었느냐고 물어보니 전부 책과 참고서란다. 어째서 어린 학생이 배워야 할 것이 이렇게도 많은지 가슴이 답답했다. 마치 ‘시시포스의 신화’ 속의 한 장면, 즉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큰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그 모습이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갔다.

몇 해 전 중학생이던 딸아이가 메고 다니던 가방을 두 손으로 들어본 일이 생각난다. 가방 무게가 군대에서 완전군장으로 구보할 때 메고 뛰던 배낭의 무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교육부 장관은 바뀔 때마다 학생들의 학습량을 덜어준다고 약속하곤 한다. 그래서 교과서도 별도의 참고서가 필요 없도록 만들겠다고 하곤 했는데 참고서는 전보다 더욱 많아졌다. 내용뿐 아니라 종류도.

우리나라 초중등학교의 교육과정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과목 수가 많기로, 내용이 어렵기로, 겉핥기식 교육으로. 그래서 가방이 무거워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학생들이 선진국 학생들에 비해 교육 전반에 걸쳐 학업성취도가 무척 높은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어린 시절만큼은 신나게 뛰어 놀며 푸른 꿈을 꾸게 해주자. 이는 어른들의 책무다. 교과목 수를 줄이고 교과를 합치자. 내용을 쉽게 하자. 그리하면 학생들의 책가방은 지금보다 훨씬 가벼워질 것이다.

백형찬 서울예술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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