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김수일/서해안의 슬픈 도요새

  • 입력 2004년 4월 19일 18시 48분


알락꼬리마도요란 이름의 도요새가 있다. 암꿩 크기의 몸집과 길게 굽은 부리에, 다리도 부리만큼이나 길고 늘씬하다. 알락꼬리마도요는 도요새 무리 가운데 몸집이 가장 큰 편이다. 몸 크기에 비해 부리와 다리가 제법 긴 모습이 도요새의 공통된 특징.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얕은 물 갯벌에서 살아가기 알맞도록 몸매를 다듬어 온 까닭이다.

알락꼬리마도요는 얕은 물 갯벌에 나가 긴 부리로 게 구멍을 뒤져 작은 게들을 잡아 다리는 떼어내고 몸통을 삼켜먹는다. 매년 봄가을에 크고 작은 무리로 우리나라 서해안에 모습을 드러낸다. 시베리아 습지에서 태어나 우리나라 갯벌을 거쳐 남반구 호주까지 머나먼 여행을 하는 나그네다.

보다 몸집이 작은 도요새들은 저마다 부리와 다리의 생김새에 알맞게 갯벌에 사는 다양한 먹이를 먹으며 철새로서 먼 여행을 준비한다. 붉은어깨도요, 개꿩, 큰뒷부리도요, 꼬까도요, 민물도요 등 이름과 종류도 정말 다양하다. 이들이 큰 무리로 갯벌에 나타나 이따금씩 날아오를 때의 ‘군무’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도요새를 만나려면 서해 바닷가로 밀물 때에 맞춰 나가는 게 좋다. 자기들 다리 길이보다 얕은 물가로 다가오는 시간이라야 도요새가 몰려드는 장관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멀리서 들려오는 도요새 울음소리는 “쫑쫑쫑, 뾰오뾰오”처럼 매우 맑고 깨끗하게 들린다. 그래선지 바닷가에서 조개를 캐는 어민들은 도요새를 ‘쫑찡이’라고 부른다. 도요새가 매년 봄가을 우리나라 서해 갯벌에 몰려든다는 사실을 알기 시작한 어릴 때부터 나는 도요새들이 찾지 않는 바닷가 갯벌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돼버렸다. 갯냄새가 바람에 실려올 때마다 도요새 소리도 함께 들려와야 제격이다. 해질녘 도요새들의 종종걸음 혹은 떼날음을 보거나 바람결을 타고 오는 울음소리를 듣는 것은 언제나 맑고 향긋한 기억으로 남는다.

요즘 화창한 봄을 맞아 산으로 들로 바깥나들이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산으로 가는 일이 많았지만, 요즘은 해안선 도로가 뚫리고 교통이 편리해진 바닷가를 찾는 사람도 많다. 내가 어렸을 때는 바닷가에 나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교통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바닷가는 군인들의 경계가 삼엄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도요새와 같은 새들을 보기 위해 쌍안경을 들고 바닷가에 나가기는 정말 어려웠다.

바닷가에 다녀온 사람들에게 어떤 새들을 보았는지 물어보곤 한다. 한 마리도 본 기억이 안 난다거나, 갈매기 몇 마리를 보았다고 듣는 게 보통이다. 요즘 도요새 무리는 남반구 호주에서 여름을 나고 우리나라 서해안을 거쳐 시베리아에 이르는 수십만리의 대장정에 올라 있다. 수천만년에 걸쳐 얕은 물 갯벌과 습지에서 살아가기로 몸매를 갖추고 태어나 언제나 갯벌에 머물러 여행길을 준비하는 도요새들이 우리 서해안에서 제철을 맞고 있다.

도시의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알아주든 아니든 도요새들은 그렇게 유구한 세월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 왔고 또 그렇게 살 수 있기를 갈망하는가 보다. 그런데 우리 서해안의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얕은 물 습지는 사라지고, 갯벌은 가는 곳마다 메워지고 있다. 온갖 먹잇감으로 풍성하던 갯벌이 죽어가고 있다. 도요새 울음소리가 어느 때보다 더 구슬피 들려오는 이유일 것이다.

김수일 한국교원대 교수·생물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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