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무전기 커닝’

  • 입력 2004년 4월 23일 18시 54분


무전기의 시대는 1930년대 미국에서 개막됐다. 자동차에 부착하는 라디오가 개발된 이후 기술을 발전시켜 쌍방향으로 송수신이 가능한 무전기를 제작한 것이다. 경찰차에 장착됐던 무전기는 경찰의 기동력을 향상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에는 ‘워키토키’가 등장한다. 무전에 필요한 송수신기와 안테나, 전원 설비를 하나로 통합해 전쟁터에서 휴대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누름 버튼이 달려 있어 손으로 누르고 떼면서 통화하도록 고안됐다. 연합군의 승리는 워키토키를 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1969년 미국의 아폴로11호가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했을 때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밝힌 첫마디를 세계의 시청자들은 생생히 기억한다. 암스트롱은 달 표면에 걸음을 내디디면서 “이것은 인간에게는 조그만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라고 말했다. 이 말이 지구로 전해진 것도 무전기를 통해서였다. 무전기는 인간의 의사소통 영역을 무한대로 확장시킨 획기적인 발명품이다.

▷대학의 편입학시험에서 무전기를 이용한 부정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돈을 받고 정답을 알려주는 데 무전기를 동원한 것이다. 토익시험에서도 무전기를 이용한 부정이 있었다고 한다. 수능시험마저 부정이 있다는 소문이 떠도는 걸 보면 모든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염두에 두고 철저히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는 반면에 시험을 주관하는 측은 ‘별 일 없겠지’ 하는 느슨한 자세로 임하는 것은 부정의 유혹을 부추기는 꼴이다.

▷젊은 세대가 이런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것이야말로 심각한 문제다. 뭐든지 고생이나 노력 없이 쉽게 결과를 얻으려 하고, 불법에 별 거리낌 없는 사회풍조가 젊은이의 순수한 심성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사회에서 첫걸음을 내디딘 청년들이 올곧게 성장하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문명의 이기(利器)들은 무전기처럼 언제든 부정한 목적으로 쓰일 수 있는 양날을 지닌다. 타락한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젊은이의 손에 먼저 쥐여줄 것은 첨단기기보다 윤리와 도덕이 아닐까. 대학 편입학시험도 도덕 과목부터 먼저 치르게 해야 할 모양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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