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법대교수

  • 입력 2004년 4월 26일 16시 59분


최근 서울지역 한 대학 법학과가 시간강사 위촉을 둘러싸고 홍역을 치르고 있다.

"시간 강사 명단을 보여달라"는 교수에게 학과장이 폭력을 휘두르는가 하면, 시간 강사 8명 중 3명이 규정에 어긋나는 사람이었음이 뒤늦게 밝혀져 학교 전체가 시끄럽다.

시간 강사 위촉을 두고 이 학교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따라가 보면, '관행'과 '권위의식'에 찌들린 우리 대학의 우울한 자화상을 만나게 된다.

지난 3월 10일 낮 12시 무렵, 서울 S여대 법학과 법학연구소 사무실.

학과장 J교수(48)의 주재로 4명의 교수가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1시간여의 회의가 끝날 무렵, 참석했던 조 모 교수(41)가 '시간강사 위촉'문제에 대해 입을 뗐다.

"학기가 시작된 지 2주가 되어 가는데 강의를 맡은 시간강사가 누구인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명단이라도 회람을 시켜주십시오."

J교수의 짤막한 답변이 이어졌다.

"시간강사 명단은 이달 말에 알려 드리겠습니다."

법학과 '강사위촉 지침'에 따르면, 강사 추천은 학과 전체 교수회의의 의결을 거쳐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J교수는 한 차례의 회의도 없이, 학과사무실에 비치된 교수들 도장을 강사추천서에 임의로 찍어 본부에 제출했다. 조 교수의 항의는 이 대목으로 이어졌다.

"강사 추천서에는 엄연히 저희들 도장도 찍혀있습니다. 빨리 알려주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지금 아는 것과 나중에 아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나. 그럼, 지금 (강사 추천서)도장을 철회라도 하겠다는 건가."

"왜 그렇게 공격적으로 말씀 하십니까"

조 교수의 항변에 폭언이 잇따랐고, 곧 '폭력'으로 이어졌다.

주먹으로 시작된 J교수의 폭행은 플라스틱 빗자루로까지 이어졌다.

J교수의 폭행은 그렇게 상당시간 계속됐고 그는 마지막 한마디를 던지고 밖으로 나갔다.

"언제든지 밖에서 맞장 한 번 뜨자."

지난 22일 연구실에서 만난 조 교수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아무런 대항도 못한 채 맞고만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날 사건으로 조 교수는 전치 3주의 진단을 받았다.

말썽이 나자 J교수는 3월 12일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폭력을 행사한 점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는 사과 메일을 돌린 뒤 학과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J교수의 징계를 요구하는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 30여명이 난색을 표하는 학교측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지만, 어찌됐건 J교수의 폭력 사건은 이것으로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J교수의 후임 학과장 C교수는 지난 21일 시간강사들의 이력서를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다. 시간강사 추천서가 너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올해 1학기 법학과 강의를 맡은 시간강사 8명 중에 학교 또는 학과 규정에 어긋나는 사람이 3명이나 됐다.

먼저 A모씨(28·여)는 박사학위를 갖고 있지 않은데다 30세 미만이어서 문제가 됐다.

시간 강사 자격에 대해 학교 규정은 '30세 이상'으로, 학과 지침은 '박사학위 소지자'로 제한하고 있다.

A씨를 추천한 J교수도 이를 의식했던지 추천서와 별도로 '협조공문'을 본부 교무처에 보냈다.

"연령제한 사항에 저촉되지만 관련 과목에 대한 경력이 충분하다고 판단되고…(중략)…우리 과의 동문으로서 재학생들의 향후 진로 선택에 대한 방향과 사기진작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C교수는 "이같은 협조전을 발송하려면 학과 전체 교수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데 우리는 이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며 "더구나 학교 동문 출신이니까 사기진작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A씨는 더구나 지난해 2월 박사과정을 수료했을 뿐 학위를 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서도 J교수는 다른 교수들의 이해를 구하지 않았다.

J교수는 <동아닷컴>과의 전화 통화에서 "박사 학위 지침은 원칙일 뿐 예외가 있을 수 있다"며 "학과 전체 교수 회의를 하지 않은 것은 관례상 지금까지 그래왔기 때문이고,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B모씨(29)의 경우 역시 '연령'과 '학위'에 있어 윤씨와 같은 결격 사유를 갖고 있다.

그는 박사과정을 수료하지도 않은, 석사 학위 상태였으며 자신이 직접 작성한 이력서에 본인 나이를 29세로 밝혔다.

하지만 대학 교무처는 '우리나라 나이로 치면 30세 이므로 결격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너그럽게 넘어갔다.

또다른 시간강사 C모씨(36)는 아예 추천서와 이력서의 학위 기재 내용이 다르게 되어 있다.

C씨는 박사 과정 수료 이후 3년째 학위를 받지 못했지만 추천서에는 '박사학위'로 기재됐다.

학과 교수들은 "조교에게 물어보니 '추천서를 타이핑 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실수로 잘못 기재했다'고 말하더라"며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명확히 기재돼 있고 C씨 역시 이력서에서 '수료'사실을 밝힌 점에 비추어 볼 때 단순한 실수로 보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대해 J교수는 "추천서 (타이핑) 작성을 내가 지시한 것은 맞지만 C씨는 같은 과 H 교수가 추천한 사람이고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사실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시간 강사 위촉을 두고 학과 내에서 '학위조작 의혹'까지 일고 있다면 강사 위촉 과정의 투명함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일선 학과의 이 같은 사태에 대해 학교측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J교수는 '폭력 사태'와 '규정 위반' 어느 쪽으로도 학교측의 제재나 징계를 받지 않았다.

법과대학 뿐 아니라 다른 학과 교수들까지 J교수의 징계를 요구하고 나섰지만 대학 교무위원회는 비밀투표를 거쳐 '무징계'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학내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조 교수는 지난 19일 폭력 및 명예훼손 혐의로 J교수를 서울중앙검찰청에 고소했고 26일에는 다른 학과 교수 1명이 삭발을 하고 총장실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그런데도 대학측은 "워낙 예민한 사안이어서 대외적으로 밝힐 만한 입장이 아무 것도 없다"며 내부 진화에만 분주한 모습이다.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간간이 봄비가 내리던 지난 22일, 교수 연구실에서 만난 조 교수는 "날씨가 흐리니까 통증이 더 심한 것 같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조 교수의 '통증'은 어쩌면, 관행과 부조리에 익숙해진 우리 대학 모두가 앞으로 앓아야 할 '몸살'의 시작일지 모른다.

김현 동아닷컴기자 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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