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과 ‘오만’의 함수관계▼
지방대가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지만 아직까지 대학과 교수의 지위는 굳건해 보인다. 전문가와 지식인 집단을 우대하는 것은 학문의 중흥, 문화의 발전을 위해 장려할 일이다. 교수는 조선시대의 선비에 비유된다. 학문에 정진하면서 비판적 지식인 역할을 하는 게 흡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수와 선비는 다른 점도 있다.
우리 대학은 문만 열면 학생들이 몰려온다는 황금시대를 거쳤고, 지금도 수도권 대학은 ‘온실 속의 따사로움’을 즐기고 있다. 입시생들의 지방대 기피 현상은 지방대에는 ‘악몽’이지만 수도권 대학에는 ‘행운’이다. 수도권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학생들이 알아서 찾아오기 때문에 변신을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대학이 오랜 세월 누려 온 안온한 생활은 자기 혁신과 완성을 위해 부단히 스스로를 채찍질했던 선비의 삶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제 교수들도 사회가 제공한 특권과 명예에 걸맞은 책무를 다하고 있는지 반성할 때다. 대학의 수요자인 학생에게 얼마나 양질의 강의를 제공하고 있으며, 국가와 공동체 발전을 위해 얼마나 연구업적을 쌓고 있는지 말이다.
최근 대학 편입시험에서 대규모 부정행위가 적발됐다. 단순한 입시부정이 아니라 대학이 여전히 ‘개혁의 무풍지대’로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서울 소재 대학의 편입학시험은 북새통을 이룬다. 높은 경쟁률 때문에 극소수가 ‘인(in) 서울’의 꿈을 달성할 뿐이다. 절박한 학생들과는 대조적으로 대학들은 ‘무전기 커닝’이 활개 칠 만큼 무성의하게 시험에 임한다. 편입시험을 등록금수입을 최대한 늘리기 위한 ‘학생 조달 창구’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는 교수채용비리 의혹이 드러났다. 채용의 대가로 거액이 건네졌다는 것이다. 세상 변화에 아랑곳 않는 이런 비리의 저변에는 대학의 오만과 폐쇄성이, 그 뒤에는 대학의 무능과 일탈에 눈감는 풍토가 자리 잡고 있다. 교육당국은 당장의 민심을 얻을 수 있는 사교육 대책에는 열을 올리지만 대학 개혁에는 소극적이다. 여론을 이끄는 지식인 집단을 의식해서일까.
대학 개혁의 열쇠는 경쟁의 회복이다. 구체적인 대안으로 선진국처럼 국립대학의 법인화가 빨리 이뤄져야 한다. 지방 국립대학은 어차피 궁지에 몰려 있다. 정부가 틀어쥐고 있는 통제의 족쇄를 풀어 주고 국립대학들이 지역 여건에 맞는 자기 혁신을 할 수 있도록 자율과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대학개혁 미룰 수 없다▼
교수사회도 변해야 한다. 학문의 동종교배나 집단이기주의, 무사안일 등 교수사회의 낡은 문화와 빨리 결별해야 한다. 노벨상 수상자는 세계 48개국에서 배출했으니 웬만한 나라에선 모두 수상한 셈이다. 아시아에서 여러 나라들이 벌써 오래전에 수상자를 배출했고 일본에선 11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4년제 대학이 무려 200개에 달하고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인 한국에서 노벨 평화상 이외에 노벨상 수상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대학 책임이다. 그렇게 많은 돈을 대학이 가져가고도 말이다. 대학의 침체와 부진에 교수들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대학의 힘이 곧 국력인 세상이다. 대학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은 요원하다. 국내도 세계도 급변하고 있다. 대학이 개혁의 뒷전에 물러서 국가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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