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기운이 있던 차에 생명평화탁발순례를 따라 남해안으로, 지리산 자락으로, 제주도로 겹쳐 돌아다녔더니 감기가 깊어졌다. 사람들은 나더러 독감에 걸렸다고 하는데 감기가 독해서 독감이라 했는지 목이 잠기고 쉴 새 없이 흐르는 콧물과 식은땀과 오한으로 무척 힘들었다. 보기에 딱했는지 집사람은 웬만해선 병원에 가지 않고 약도 먹지 않는 줄 뻔히 알면서도 이번엔 제발 약을 좀 먹어 보라고 성화다.
왜 몸이 아픈가. 감기는 질병인가. 그리고 이른바 질병이란 게 과연 의약(醫藥)으로 치유될 수 있는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 내 나름의 생각은 이렇다. 몸이 아픈 건 우리 자신이 자연성을 잃어버렸거나 왜곡된 탓으로, 달리 말해서 지금의 내 삶의 방식이 자연의 본성에서 벗어나 바르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이란 것이다. 그런 까닭에 건강과 치유 또한 삶의 방식을 자연에 맞도록 바르게 회복하는 데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어쨌거나 여느 때보다 심하게 감기 몸살을 앓으면서 몸에 대한 생각을 보다 깊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체험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앓는다는 것은 몸을 제대로 느끼기 위한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몸이란 무엇인가. 내 몸에 실타래처럼 뒤얽혀 있는 것 같던 사념의 끈들이 며칠 앓는 동안 하나씩 풀려나가는 듯싶더니, 생각이 텅 빈 것처럼 여겨지는 순간에 몸 그 자체에 대한 어떤 느낌이 깨어난다. 생각으로서가 아니라 ‘이것이 내 몸이구나’ 하는 생생하고 구체적인 느낌이다. 몸앓이를 통해 얼핏 몸의 실체를 느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이 몸이 있어 지금 이렇게 내 존재가 있다. 몸은 이 존재의 드러난 모습인 것이다. 이 몸이 나라고 하는 존재 그 전부는 아닐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이 몸을 떠나서는 지금의 이 존재 또한 없다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이 몸이란 것을 주의 깊게 느껴 보면 그 자체로 자연임을 알 수 있다. 이 몸이란 자연의 요소로 이뤄져 있을 뿐 아니라 자연에 의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몸과 자연이라고 하는 것과의 경계는 어디인가. 우리의 몸을 넓혀 가면 그것이 곧 자연이고, 나와 분리되어 있다고 인식해 온 저 자연을 구체적으로 축소해 오면 거기에 이 몸이 놓여 있다. 그런 점에서 몸에 대한 바른 인식은 자연에 대한 바른 인식에 닿아 있고, 이 몸을 잘 느끼고 잘 돌보는 일이 곧 자연을 잘 느끼고 잘 돌보는 일과 둘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람의 몸을 치유하기 전에 먼저 신음하고 있는 땅을 치유하라는 경구는 이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생태적 삶, 자연과 조화되는 삶이란 이 몸과 이 자연이 둘이 아님을 알고 그렇게 사는 삶이 아닌가 싶다. 자연으로서의 이 몸을 제대로 잘 돌보고 이 몸, 이 존재의 근원으로서의 자연에 잘 따르는 삶이 그것이다. 저무는 이 봄에 이렇게 몸앓이를 하는 것은 여태껏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말로만 ‘농사’ 짓고 생각으로만 ‘생태적 삶’을 살아 온 탓이 아니겠는가.
이제 몸을 추슬러 들로 나서야겠다. 그게 자연인 몸에 제대로 따르는 길이 아닌가 싶다.
이병철 전국귀농운동본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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