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에 대해 제법 안목이 있는 집의 아이가 고교에 재학하고 있을 때다. 어느 날 녀석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아빠 제 희망은 재벌 2세가 되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재벌이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재벌 2세가 꿈이라니…. 저 아이가 왜 저런 생각을 갖게 됐을까?” 뒤집어 보면 녀석은 자신의 장래 희망이 아니라 명품을 턱턱 사줄 수 있는 부자 아빠를 갖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한 셈이다. 한평생 돈보다는 명예를 소중하게 생각해 왔던 가난한 아빠는 그 후 꽤 오랫동안 충격과 자괴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버이날에 즈음해 대학문화신문이 취업정보사이트 파워잡과 함께 대학생 606명을 대상으로 ‘부모에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결과 ‘재력’을 꼽은 답변이 44%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대학생의 절반가량이 부자 아빠를 앙망하고 있는 세태를 반영한 셈이다. 이어 ‘이해와 포용력’(18%) ‘인맥’(5%) ‘학력’(4%) ‘리더십’(4%) 순으로 나타났고 ‘아무것도 없다’고 한 응답자도 17%나 됐다.
▷자식을 스파르타식으로 키운 일본의 유명 정치가는 언젠가 자신의 저서에서 “요절(夭折)하는 아버지가 가장 이상적인 아버지”라고 말한 바 있다. 의지할 곳 없는 상태에서 혼자 힘으로 일어선 자식만이 큰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자식에게 명품을 선뜻 사줄 수 있는 부자 아빠도 아니고, 기꺼이 요절할 만큼 용기 있는 아빠도 아닌 이는 어버이날 자식들에게 카네이션 한 송이 받는 것만으로도 황공할 지경이다. 자식 노릇도 어렵지만 부모 노릇하기는 더욱 어렵고 힘든 세상 아닌가.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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