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견 비공개]찬 “공개땐 국론분열”…반 “역사적 결정 실명 제시”

  • 입력 2004년 5월 11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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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철 헌법재판소장(왼쪽)과 주선회 재판관이 11일 출근하면서 사흘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최종결정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안철민기자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왼쪽)과 주선회 재판관이 11일 출근하면서 사흘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최종결정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안철민기자
헌법재판소가 11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탄핵심판사건 최종 결정문에 재판관들의 소수 의견을 명시하지 않기로 잠정 결론을 내린 것은 이 사건의 민감성과 소수 의견을 낸 재판관들의 부담을 두루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결정의 배경=먼저 이번 사건의 성격상 결론이 어떻게 나오든 소수 의견이 공개될 경우 상당한 정치적 파장과 국론 분열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헌재가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헌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심판이라는 민감한 정치적 사건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정치적 견해 등에 따라 헌재의 ‘결론’을 바라보는 시각도 상반될 수 있다는 것. 헌재의 결정이 내려지면 탄핵 심판으로 인한 그동안의 혼란이 수습돼야 하는데 소수 의견 개진은 이에 역행하는 국민적 갈등의 시초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번 결정에는 소수 의견을 낸 재판관들의 개인적인 부담도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헌재의 결론과 상반되는 재판관들의 소수 의견이 공개될 경우 반대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재판관 개개인에게 정치색이 덧씌워지면서 인터넷 등을 통한 불특정 다수의 음해나 인신공격, 협박이 뒤따를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앞으로 다른 사건의 결정에서도 공정성 논란이 제기될 우려도 있다. 실제 이 사건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재판관들의 다양한 의견이 제기됐고 결론을 이끌어 내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헌재의 소수 의견 비공개 결정은 헌법재판소법이 탄핵심판사건에 대해 소수 의견 공개의무를 지우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면도 있다.

▽‘공개해야’ 의견도=하지만 이석연(李石淵) 변호사는“재판관 개개인에게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한 것은 헌재 재판관들에게 부여된 특권”이라며 “헌재가 소수 의견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헌법 수호의 보루로서의 사명 의식을 저버리는 것이며 헌재 재판의 신뢰성과 중립성에 손실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갑배(金甲培) 대한변협 법제이사도 “이번 사건은 역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결정이기 때문에 헌재는 소수 의견을 재판관들의 실명(實名)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탄핵이 기각될 경우 최종결론과 상반되는 소수 의견을 공개하는 것 자체가 당사자인 대통령에게 주의를 촉구하거나 환기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재판관들의 의견이 몇 대 몇으로 나뉘어 결론이 내려졌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소수 의견을 공개하지 않는 대신 결정문에 소수 의견의 취지를 일부 반영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소수 의견을 낸 재판관들의 실명은 거론하지 않은 채 그 내용만 공개될 경우 ‘누가 소수 의견을 냈는지’에 대한 추측과 소문만 무성해져 오히려 혼란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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