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의 구호 중에는 ILO가 나서서 중재역할을 해달라는 것도 있었다. ILO는 정부와 노동자, 기업 등 3자로 구성된 국제기구인 만큼 조정자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날 ILO사무소장은 건물 로비에서 시위대 대표 3명을 만나 그들의 요구사항이 담긴 편지를 인도네시아 정부에 전달하겠다고 약속했고, 시위대 대표들은 이로써 상황을 종료키로 했다.
그 순간 뜻밖의 해프닝이 벌어졌다. 시위대 대표들이 사전에 준비해 온 ‘편지’를 찾지 못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편지를 누가 갖고 있지”라며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이 엉뚱한 상황으로 인해 시위 현장은 긴박감을 벗었고 시위대도 순박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현장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웃음꽃을 터뜨렸다.
지난해 내가 ILO에 인턴 과정을 하러 간다고 하자 주변의 반응은 완전히 상반됐다. “ILO면 노조단체 아닌가. 거길 왜…”라는 사람들, “노동자 인권단체에 좋은 일 하러 가네”라는 친구들. 흑백 구분이 멀리 있지 않았다.
지금 우리나라에선 성장이냐 분배냐의 논란이 한창이다. 민주주의 발전 과정 중의 한때 진통이라고 하기엔 갈등이 너무나 파괴적이고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한발씩 물러서서 자신을 뒤돌아보는 여유가 절실하다.
치열함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의 순박함과 그들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공공기관의 전향적인 자세를 우리 사회에서도 보고 싶다.
박세은 전 ILO인턴·서울 강동구 둔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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