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수험생, 강의내용 수능출제 방침에 반발

  • 입력 2004년 5월 30일 18시 07분


최근 교육인적자원부가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교육방송(EBS) 강의교재뿐 아니라 강의내용도 반영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힘에 따라 반영방법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수능 출제위원들이 한 달 안팎의 출제기간에 EBS 강의내용을 검토하기에는 강의 분량이 너무 많아 사설학원 강사 등으로 구성된 EBS 강사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

실제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최로 6월 2일 실시되는 수능 모의고사를 앞두고 EBS 강사들은 출제위원단이 참고할 수 있도록 강의 중 강조한 내용을 요약해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수험생들은 수능 준비를 위해 EBS 강의를 모두 듣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EBS 강사가 수능도 출제하나”=EBS 강사 A씨는 지난달 EBS로부터 모의고사 출제에 필요하다며 강의 때 강조한 내용을 요약 정리해 달라는 제안을 받고 당혹스러웠다고 밝혔다.

A씨는 “강의내용을 대략 요약해 얘기해 줬는데 학교에서 하는 ‘내신시험 찍어주기’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씁쓸해했다.

강사 B씨도 “EBS측으로부터 요구를 받고 급히 자료를 작성해 넘겼다”며 “특정 강의내용이나 교재에 대해 획일적인 암기를 강요하는 것은 비교육적인 처사”라고 지적했다.

강사 C씨는 “수능 출제위원도 EBS 강의를 다 들을 수는 없기 때문에 강의내용에서 출제할 경우 결국 강사들이 이런 식으로 찍어주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평가원에서 나름대로 기준을 세워 출제를 하겠지만 국가시험을 사설학원 강사 등에게 의존한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꼬집었다. EBS 초고급 강의의 경우 대부분 사설학원 강사가 맡고 있다.

▽“수험생 부담만 가중”=수험생들은 EBS 강의내용에서도 문제를 출제할 경우 강의를 모두 들어야 하기 때문에 학습부담이 너무 커진다며 항의하고 있다.

교육부 인터넷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한 수험생은 “학교 수업이 끝나고 매일 강의를 들어도 EBS 강의를 다 듣는 건 불가능하다”며 “학교 대신 EBS로 수업을 하라는 의미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또 한 학부모는 “EBS 강의를 다 들으려면 혼자 공부할 시간은 아예 없다”며 “수능이 몇 달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교육부가 수험생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선 교사들 역시 교육부의 정책이 학교 교육을 황폐화시키고 있다며 우려했다. 서울 J고 이모 교사(51)는 “학생들이 공부할 분량이 늘어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어려움을 호소한다”면서 “교육부가 사교육비를 잡으려고 무리수를 둠으로써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전국언론노조 EBS지부는 28일 성명을 내고 “EBS 강의내용에서 문제를 출제하는 것은 공교육을 훼손하고 학생들에게 과도한 학습부담만 주는 임시방편식 입시대책”이라고 비판했다.

▽“EBS 강의, 본래 목적으로 되돌아가야”=전문가들은 EBS 강의가 수준별 강의를 통해 공교육을 보완하는 본래의 취지대로 운영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한재갑 대변인은 “교육부가 사교육비 경감에만 지나치게 집착해 학교 교육을 파행으로 몰고 가고 있다”며 “수능 출제 방침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학원에서 EBS교재를 요약 강의하는 또 다른 사교육을 막기 위해 검토한 조치”라며 “강의내용까지 반영하기로 최종확정된 것은 아니며 평가원과 계속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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