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1월 14일 한 신문이 ‘선두를 달리는 여성’이란 제목으로 니트 디자이너 이의신(李義信·63)씨를 소개하며 쓴 첫 문장이다.
이씨는 니트 의류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의상디자인을 공부한 적이 없는 평범한 주부였던 이씨는 71년 한 방송국이 주최한 아동복 콘테스트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그 후 그의 작품은 여성지를 통해 대중에게 널리 소개됐다.
왕성한 활동을 하던 이씨는 90년대 들어선 거의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져 갔다. 그러던 그가 지난해 11월 일본에서 모처럼 개인 작품전을 열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남한강변의 국도 6호선을 따라 경기 양평군으로 향했다. 양평읍내를 지나 용문산 자락에 이르자 나무와 돌로 지은 아담한 단층집이 눈에 들어왔다. 사방이 산으로 덮여 있고 3800평 대지에는 온갖 꽃나무가 가득했다.
서울에 살던 이씨는 1994년 남편이 퇴직하면서 경기 양평군으로 이사왔다. 양평에는 이씨의 외가가 있었다. 수려한 풍광에 마음이 끌려 언젠가는 양평에서 살겠다고 결심한 지 수십년 만에 꿈을 이룬 것.
그의 삶은 단조롭다. 오전 5시반에 일어나 꽃나무를 가꾸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그리고 3년 전부터 양평읍사무소에서 해 오고 있는 니트 무료강좌를 준비한다. 강의하고 잡초를 뽑고 사람들을 만난 뒤 오후 8시경 잠이 든다. 그리고 자정쯤 깨어나 작품을 만든다고 한다.
“남들은 제가 웰빙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늘 즐거운 것만은 아니에요.”
이씨는 97년 남편이 숨진 후 여동생과 단 둘이 살고 있다. 요즘 작품 구상에 여념이 없는 그는 연말경 국내에서 개인전을 열 계획이다. 니트 단행본 출간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꿈이 조금씩 영글어 가고 있다. 이씨는 양평에 ‘니트마을’을 만들 생각이다.
니트 강좌를 통해 수제자 3명을 만났다. 이들과 함께 니트 디자이너가 모여 사는 마을을 만들고 니트 학교도 설립할 계획이다. 니트 전시장을 마련해 해외에서 니트를 배우기 위해 양평을 찾게 될 날을 꿈꾸고 있다.
“누군가 제 얘기를 듣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양평에 왔다가 멋진 니트도 구경하고 가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천만에요. 반대로 멋진 니트를 구경하러 양평에 왔다가 맛있는 음식도 먹고 가는 곳으로 만들 자신이 있어요.”
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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