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원 파주시장 한강서 투신자살

  • 입력 2004년 6월 4일 18시 22분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의 내사를 받던 이준원(李準原·51) 경기 파주시장이 한강에 투신해 숨졌다.

4일 오후 3시47분경 이 시장은 자신의 다이너스티 승용차를 타고 서울 반포대교 북단에서 남단으로 가다 25번째 교각 위에 차를 세우고 한강으로 몸을 던졌다.

이 시장은 11분 후 경찰에 의해 발견됐으나 인근 순천향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숨졌다. 이 시장을 구하기 위해 한강으로 뛰어든 것으로 추정되는 운전사 이원범씨(30)의 시신은 이날 오후 5시40분경 인양됐다.

이 시장은 이날 오전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에서 열린 어린이미술대회에 참석한 뒤 연락이 끊겼었다.

그는 파주시 탄현면 금승리 웅지세무대학 설립 과정에서 편의를 봐준 대가로 지난해 3월 2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의 내사를 받아 왔다.

검찰은 계좌를 추적해 금품 수수 사실을 확인하고 사용명세도 일부 확인한 상태였다. 검찰은 이날 이 대학에서 1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파주읍장 박모씨(48)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또 시장 비서실장 천모씨(34)와 전 파주시 건축과장 여모씨도 소환해 조사했다.

파주시의 한 간부는 “측근들이 검찰 조사를 받은 데다 검찰이 이날 오후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시장실을 찾아온 데 대해 이 시장이 심한 압박감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시장이 100억원대의 자산가로 알려져 과연 대가성으로 2000만원의 뇌물을 받았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 아직 검찰에 소환조차 되지 않은 상태여서 자살 동기도 의문이다.

한 측근은 “지역발전을 위해 대학 유치에 앞장선 이 시장이 돈을 받았다면 대가성이 없는 것이라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도덕성을 강조한 본인이 수사 대상에 오르자 심한 자괴감에서 투신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 시장은 현대자동차 전무 및 INI스틸(옛 인천제철) 전무를 지낸 전문경영인 출신으로 2002년 한나라당 공천으로 파주시장에 당선됐다. 1992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4대 대선 출마를 위해 국민당을 창당하자 국민당 파주지구당 위원장을 맡아 선거를 치른 경험도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중씨(50)와 2남 1녀가 있다. 이 시장은 아버지(78) 어머니(64)와 함께 거주해 왔다.장례는 파주시장으로 5일장으로 치르기로 했으며 파주시는 시청 3층 본관 대회의실에 분향소를 마련했다. 발인은 8일 오전 10시로 예정.

고양=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정원수기자 needjung@donga.com

▼구조하러 뛰어내린 운전사도 숨져▼

이준원 파주시장의 운전사 이원범씨가 이 시장을 구하기 위해 한강으로 뛰어들었다가 함께 숨져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경찰은 현장에서 이씨가 벗어 놓은 상의와 신발, 넥타이가 발견된 점으로 볼 때 이 시장이 한강에 투신하자마자 다급한 마음에 그를 구하기 위해 뛰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씨는 지난해 3월 24일부터 파주시청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다 성실성을 인정받아 근무 2개월여 만인 6월 상용직으로 직급이 오르면서 이 시장의 운전사로 발탁됐다.

파주시 공무원들은 “그때 이씨가 ‘월급도 오르고 시장을 모시게 돼 영광’이라며 매우 기뻐했다”고 전했다.

이씨와 함께 파주시청 인근의 원룸에서 생활하는 동료 직원 여모씨(29)는 “형(이씨)은 오전 6시에 일어나 시장 모시러 가고 빨라야 밤 10시에 퇴근해도 ‘시장을 모시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할 정도였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미혼인 그는 1993년 경기 김포시 통진고교를 졸업하고 1994년 해군에 자원입대해 1996년 11월 제대했다. 2000년에는 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입학하는 등 향학열도 남달랐고 의협심도 강했으며 2002년에는 합기도 4단을 따기도 했다. 그러나 이처럼 성실하고 충직하게 살아 온 이씨는 김포시에 사는 아버지(56)와 어머니(51), 여동생(28), 남동생(24) 등 가족의 오열 속에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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