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말부터 5년간 북파공작원 생활을 해온 백봉의씨(63)는 30여년 동안 자기 이름을 숨기고 살아왔던 세월을 더듬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백씨는 초등학생 때 집안문제로 가출해 서울로 올라와 치과기공사 자격 시험을 준비했다. 세월이 흘러 고향에서 군기피자로 몰려 온전히 자격증을 받을 수 없었던 백씨는 서울에서 남의 집 양아들로 들어가 '윤준식'이라는 이름을 처음 쓰게 된 것.
그의 인생이 180도 바뀐 것은 백씨가 20대 후반이던 1968년이었다. 백씨는 서울역 부근에서 북파공작원 모집책을 만나 "1년만 고생하면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군대를 안갔다 왔으면 병역도 해결된다"는 말을 듣고 입대를 결심했다.
백씨는 북한에도 수차례 잠입하는 등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도 받았지만 1년만 일하면 된다는 약속과 달리 군은 백씨를 놓아주지 않았다는 것.
5년째 공작원 활동을 하던 1973년 백씨는 잠시 외출하겠다는 핑계를 대고 부대에서 도망쳐 나왔다.
이후 백씨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윤준식'이라는 이름으로 살게 됐다.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조금이라도 이상한 느낌이 들면 바로 이사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30여년간 가명으로 지내오던 백씨는 최근 국회에서 '특수임무 수행자 보상법'이 통과돼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난달 서류 준비를 위해 고향을 방문했다가 '백봉의'는 이미 사망했다는 사실을 접하고 말았다.
백씨는 "북파공작원에서 도망친 뒤 군에서 자꾸 찾아오자 가족 중 누군가가 20년 전 사망신고를 해놨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백씨는 호적회복신청과 함께 군에도 정식으로 보상신청을 할 계획이다.
대한민국특수임무수행자총회 김정식 회장(57)은 "특수한 군생활을 하다가 사회에 나온 이들은 취업이나 사회생활에서 차별을 받는 등 겪는 고통이 너무 크다"며 "이들을 사회에서 감싸 안아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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