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CIA에 몸담았던 그레그 전 대사는 10일 이라크 포로학대 파문으로 불거진 미 행정부의 ‘고문 허용 지침’ 논란에 대한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어떤 경우에도 고문이 허용돼서는 안 된다”며 자신의 ‘항명’ 경험을 소개했다.
그레그 당시 지부장은 김대중 납치사건에 항의하는 대학생들의 시위 배후조종 여부를 조사받던 최 교수가 고문을 받다가 사망했거나 고문 고통을 이기지 못해 창문에서 뛰어내려 숨졌다는 사실을 알고 CIA 본부에 보고했다.
그는 보고와 함께 한국 정부에 항의할 수 있도록 허용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그의 상관은 “그것은 당신의 업무가 아니다. 사실을 보고만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그레그 지부장은 지시를 어기고 청와대 경호실장(박종규)을 만나 “한국 중정은 북한과 맞서는 일보다는 국내 야당인사를 압살하는 데 더욱 주력하고 있으니 함께 일할 수 없다”고 항의했다.
항의가 ‘개인 차원’임을 분명히 했으나 효력이 있었던지 1주일 뒤 중정 부장(이후락)이 경질됐고 법무부 장관 출신의 새 중정 부장(신직수)은 취임 후 첫 조치로 요원들에게 고문 금지 지시를 내렸다는 것.
거의 매년 CIA 요원들을 상대로 강연하는 그레그 전 대사는 “이 일을 나의 CIA 경력 가운데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후배 요원들에게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자기처럼 행동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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