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위에 지방의회?… 상위법에 어긋나는 조례 잇따라 제정

  • 입력 2004년 6월 13일 18시 54분


지방의회가 ‘지방의원 유급 보좌관제’ ‘학교급식 국내 농산물 이용’ 등 법령에 근거가 없거나 상위법과 충돌하는 조례를 잇달아 제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는 지방자치에 맞춰 지역의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바람직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조례가 거꾸로 법 개정의 압력수단으로 이용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유급 보좌관제 조례 등=서울시의회에 이어 경북도의회는 최근 지방의원 유급 보좌관 조례를 의결했다. 의원마다 5급 별정직 사무관을 두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도의회 관계자는 “지방분권에 따라 국가사무가 자치단체로 대폭 이양됨에 따라 지방의원들의 전문성과 정책개발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보좌관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북도 자치행정과 관계자는 “별정직 공무원의 증원은 행정자치부 장관 승인사항인데도 도의회가 일방적으로 의결했다”며 “아울러 지자체에 재정부담을 주는 사안은 자치단체장과 사전 협의를 해야 하는 의무도 위반했다”고 말했다.

경북도의회 의원 57명이 유급 보좌관을 둘 경우 필요한 인건비는 연간 20억원 정도. 경북도는 도의회에 재의결을 요구할 방침이며,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대법원에 제소할 예정이다.

앞서 서울시의회는 지난달 의회 사무처에 의원 보좌관 102명을 두는 조례를 의결한 바 있다.

광주시의회와 전남도의회는 주민소환법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난달 공직자 소환 조례안을 가결하기도 했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현행 법령상 근거가 없는데도 의회가 조례 제정을 강행하는 것은 조례제정권을 상위 법령 개정의 압력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산 농산물 사용 학교급식 조례=경북 구미지역의 시민단체와 학부모들은 12일 주민 1만여명의 서명을 받아 국내산 농산물을 학교급식에 사용토록 하는 내용의 조례를 제정해 달라고 구미시에 청구했다.

이에 대해 구미시는 이 조례의 경우 세계무역기구(WTO)나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위배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어서 난처해하고 있다.

구미시 관계자는 “학교급식 조례 제정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정부 방침과 배치돼 판단이 어렵다”며 “정부가 분명한 입장을 제시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행자부는 11일 제주도의회가 주민발의로 제정한 학교급식 조례에 대해 재의결을 요구하기도 했다.

행자부는 “지방정부가 국내산 농수축산물을 학교급식에 사용토록 권장하는 한편 이 농산물에 한해 재료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한 급식조례는 국내법과 효력이 같은 국제협정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전북도교육청은 지난달 도의회가 학교급식에 지역농산물 사용을 의무화하는 조례를 통과시키자 WTO 협정에 위반된다며 법원에 조례 무효소송을 내기도 했다.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법령에 저촉되는 조례들▼

○5급 사무관 유급 보좌관제 : 서울시의회 경북도의회

○재산세율 50% 인하 : 서울 강남구의회

○공직자 소환제 : 광주시의회 전남도의회

○국산 농산물 학교급식 이용 : 경기 경북 제주도의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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