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국민투표는 안 된다’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물론 ‘국회에서 국민투표를 수도 이전 문제의 해결방법으로 논의해서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리면 따르겠다’고 국회쪽으로 공을 떠넘기면서 여지는 남겼다. 하지만 여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가 국민투표 실시에 의견을 모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날 오전 9시반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긴급 기자간담회는 아침 일찍 노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갑작스럽게 결정됐다. 노 대통령은 회견 2시간 전인 오전 7시반 이병완(李炳浣)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에게 기자간담회를 갖겠다는 뜻을 밝혔고 청와대측은 오전 8시경 출입기자들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이를 알렸다.
노 대통령은 이날 아침 대선 당시 국민투표 공약을 했다는 조간신문들의 보도를 보고 명확하게 입장을 밝히기로 결심했다는 후문이다. 또 전날 일부 참모들과 의견을 나눴으나 ‘국민투표 불가(不可)’라는 데에 아무 이견이 없었다고 한다.
갑자기 마련된 간담회여서인지 노 대통령은 어떤 메모나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즉석 발언 형식으로 15분가량 입장을 밝히고 질문에 답변했다.
노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16대 국회에서 법을 통과시켜 줬다가 국민투표 주장으로 입장을 바꾼 한나라당 공격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국회가 언제 번복할지 모르는데, 정부가 뭘 믿고 정책을 집행하겠느냐”고도 했고, “정치 수준이 이래서 되겠나. 스스로 한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알아야 정치지”라고 말할 때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국민투표를 제안하기 어렵다는 점을 설명할 때에는 “이것 말고 내 마음에 안 드는 다른 법안 한두 개 끄집어내서 국민투표에 한번 부쳐 볼까요. 예를 들어 지역 구도를 극복할 수 있는 선거구제도를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국회가 이를 들어주지 않았다. 이것을 국민투표에 부쳐 보면 정치권이나 헌법학자들이 가만히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한 야당과 언론을 겨냥해 “한 번 결정한 것은 승복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자”고 불만을 드러냈다.
노 대통령은 나아가 “(국민투표 실시 주장에는) 대통령 흔들기의 저의도 감춰져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청와대 내에서는 야당의 국민투표 주장 이면에는 현 정권의 입지를 크게 약화시키려는 정략적 의도가 강하다는 시각이 많다.
수도 이전에 관한 국민투표의 경우 비록 정책사안에 대한 투표이지만 노 대통령 스스로 “정권의 명운과 진퇴를 걸고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처럼 정권의 운명을 건 일대승부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청와대측은 국민투표를 해도 승산이 높다고 말하지만 법적 근거를 이미 확보한 상황에서 굳이 소모전을 벌일 이유는 없다고 보는 듯하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