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살인의 추억]<上>도전받는 경찰수사력

  • 입력 2004년 6월 28일 18시 32분


최근 1년여 동안 서울과 경기 일대에서 발생한 주요 살인사건이 모두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살인사건 해결이 더뎌지면서 ‘서울남부 괴담’처럼 해당 지역 주민들의 불안감은 갈수록 확산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계기로 한계에 다다른 경찰 수사력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주요 살인사건 검거율 0%=경찰청이 집계한 지난해 살인사건 검거율은 90%대. 그러나 사회적 관심을 끈 대형 살인사건은 거의 모두 미제로 남았다.

송파구 삼전동 일가족 3명 피살사건(지난해 4월 6일), 서초구 서초동 여공무원 피살사건(지난해 5월 22일), 강남구 신사동 명예교수 부부 피살사건(지난해 9월 24일), 종로구 구기동 일가족 3명 피살사건(지난해 10월 9일), 강남구 삼성동 군납업체 사장 부인 피살사건(지난해 10월 16일), 종로구 혜화동 노부부 피살사건(지난해 11월 18일) 등이 반년 이상 수사를 벌였으나 범인을 잡지 못한 대표적 사건.

여기에 최근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잇따라 일어난 5건의 부녀자 살인사건(2건 미수)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무동기 살인’과 도미노식 확산=서울의 경우 매년 1, 2건의 살인사건이 장기 미제로 남게 되는 경우는 있었지만 불과 1년여 만에 14건의 살인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경찰은 그 근본적인 이유로 범죄동기가 불분명한 선진국형 ‘무동기 살인’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그동안 살인사건은 범인이 피해자 주변인물인 경우가 많았고, 피의자에 대한 강압수사도 어느 정도 용인돼 상대적으로 수사가 쉬웠으나 최근 이런 공식이 깨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초동 여공무원 피살사건, 삼전동 일가족 피살사건, 최근의 서울 서남부 부녀자 피습사건 등도 강도나 성폭행의 흔적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면식범에 의한 범행에 초점을 맞췄으나 피해자 주변 인물들의 알리바이가 입증되면서 수사에 진전이 없다.

또 다른 특징은 유사한 수법의 사건이 도미노식으로 꼬리를 물고 있다는 것. 지난달 강남구 역삼동에서 발생한 명문대 출신의 30대 여회사원 살인사건은 살인 후 증거인멸을 위해 불을 지르고 소방서에 신고까지 한 사건이다.

이는 지난해 4월 발생한 삼전동 일가족 살인사건과 수법이 유사하다.

또 지난해 10월 발생한 구기동 일가족 살인사건 이후 유사한 형태의 일가족 살인사건이 혜화동, 삼성동 등에서 잇따라 발생했다. 서울 서남부 부녀자 피습사건 역시 수법이 비슷하다.

▽수사력에 한계=그러나 이러한 추세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경찰의 수사와 대응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살인사건이 해결되지 않자 경찰이 ‘사후약방문’식으로 대규모 인력을 해당지역에 투입해 대대적인 방범활동에 나선 것이 오히려 미제사건 도미노 현상을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서울지역만 하더라도 살인사건이 해결의 실마리는 찾지 못한 채 강남→강북→남부→강남 등 방범활동이 느슨해진 지역을 찾아 옮겨다니고 있다는 것. 경찰 관계자들도 수사가 한계에 이르렀음을 실토하고 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살인이 지능화 기동화 광역화되고 살인범들이 경찰의 수사기법을 대부분 파악하고 있는 반면, 인권의식이 높아지고 경찰의 수사기법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 미제사건이 많아지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정원수기자 needjung@donga.com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