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00년대에는 우발적이거나 호기심에 의한 살인 등 ‘우연한 동기’에서 살인을 저지른 경우가 1970년대에 비해 6배 이상 증가했으며,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을 살해한 경우도 1.5배가량 늘었다.
중장년층 및 고학력자의 비율도 훨씬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를 고려한 중장기적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우발적 살인 급증=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전체 범행 동기 중 ‘우연한 동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70년대 5.5%에서 2000년대 34.6%로 크게 늘었다는 것. 70년대 살인 동기로 가장 높은 비율(37.6%)을 차지했던 원한이나 보복 등 ‘감정적’ 동기는 2000년대 들어 8.5%로 크게 줄었다.
경제적인 동기도 70년대의 12.8%에서 2000년대에는 8%로 줄었다. 그러나 70년대나 2000년대나 ‘가정적인 이유’는 8.1%와 9.8%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같은 맥락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변화는 범죄자와 피해자의 관계. 70년대에는 자신과 아무 관계도 없는 타인을 살해한 경우가 13%에 불과했으나 2000년대에는 무려 22.9%로 늘어났다.
▽살인의 지능범죄화=살인 범죄자의 연령, 생활수준, 교육수준 등 기본적인 배경도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70년대에는 16∼30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63.7%로 살인 범죄자의 대부분이 10, 20대였다. 그러나 2000년에는 이들 연령대의 비율이 27.4%로 줄었고 2001년 25.5%, 2002년 19.2% 등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반면 30, 40대 범죄자의 비율은 70년대 28.8%에서 2000년대 59.9%로 증가했으며 61세 이상 노인 살인범의 비율도 2배 이상 높아졌다.
교육수준은 70년 초등학교 졸업자가 46.5%로 가장 많았지만 2002년에는 18.8%로 줄어든 반면 고졸인 경우가 41.6%에 달했다. 대학 재학 이상인 경우도 70년대 5.1%에서 2002년 14.3%로 늘어났다.
생활수준 역시 자신의 생활수준을 중류 이상으로 분류한 경우가 70년대 12.1%에서 2000년대 26.9%로 2배 이상 증가한 반면 하류층으로 분류한 경우는 20% 이상 줄었다.
▽중장기적 대비책 마련해야=전문가들은 이 같은 살인 범죄자의 질적 변화에 따른 국가 차원의 중장기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형민 박사는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전과의 대부분은 폭력 전과”라며 “실제 살인은 우발적이라도 폭력적인 행동양식에 익숙한 사람들이 살인을 저지를 가능성이 점점 커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원 최인섭 실장은 “외환위기의 상처가 제대로 치유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황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지난해부터 살인 등 범죄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수 수사인력 양성과 함께 범죄예방 활동 강화, 사회안전망 회복 등 광범위한 사회 정책적 고려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원수기자 needjung@donga.com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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