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제1부(주심 박재윤·朴在允 대법관)는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해오던 환자를 가족의 요구에 따라 퇴원시켜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서울 B병원 의사 양모씨 등에 대해 24일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사실 관계=환자 김모씨는 1997년 12월 4일 뇌를 다쳐 B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치료를 받았다. 김씨의 부인 이모씨는 이틀 뒤 치료비가 260만원에 이르자 더 이상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의사 양씨 등에게 퇴원을 거듭 요구했다.
양씨 등은 “퇴원하면 사망한다”면서 김씨의 퇴원을 허용하지 않았으나 부인 이씨가 계속 퇴원을 요구하자 같은 달 6일 김씨를 퇴원시켰다. 환자 김씨는 퇴원해 인공호흡기를 뗀 뒤 5분 만에 숨졌다.
검찰은 의사 양씨와 3년차 수련의 김모씨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판결 내용=1심 재판부는 양씨 등에 대해 살인죄를 인정했다. 2심 재판부는 공소장 변경 없이 재판부 직권으로 살인죄 대신 살인방조죄를 인정했으며 대법원은 2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피고인 양씨 등이 환자 김씨가 퇴원할 경우 사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부인 이씨가 환자를 집으로 이송하고 호흡 보조장치를 제거하는 것을 도운 점이 인정되므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환자의 사망에 이르는 핵심적 경과를 계획적으로 조종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살인죄가 성립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부인 이씨는 2심에서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상고를 포기했다.
이수형기자 sooh@donga.com
의협 "의료현실 무시" 강력 반발
▽의미와 반응=우리 의료계는 보호자나 환자가 원하면 퇴원을 허락해 결과적으로 환자가 숨지게 하는 관행이 있었다. 법원은 이번 확정 판결로 이 같은 관행에 제동을 걸었지만 의료계는 이에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29일 성명을 내고 “대법원 판결은 우리 의료현실을 무시한 것”이라고 반발하면서 “의료진의 충고에 반하는 퇴원에 대해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은 안락사와는 다르다. 고통이 극심한 불치병 환자를 환자 본인의 요청에 따라 편안하게 숨지게 하는 안락사는 기존 판례에 따르면 살인죄로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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