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風水)로만 따지면 수도이전 후보지로 거론되는 4곳이 모두 서울만 못합니다."
정부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는 지난 15일 후보지 4곳의 명단을 발표했다. △충남 공주(장기면)-연기(남·금남·동면) △충남 천안(목천읍 성남·북·수신면) △충남 공주(상월면)-논산(계룡면) △충북 음성(대소면·맹동면)-진천(덕산면) 등이 이 명단에 올랐다.
이들 4곳에 대해 풍수 전문가들은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을까.
풍수에 정통한 일부 국내 지리학자들은 "4곳 가운데 도읍지로서 한양(서울)보다 나은 곳은 없으며, 그래도 꼽으라면 공주-논산 지역"이란 의견을 보였다.
또 "수도 이전은 천년대계(千年大計)인만큼 더욱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며 "굳이 옮겨야 한다면 이들 지역보단 대전 이남의 금산·옥천·영동 지역이 풍수적으로 뛰어나다"는 입장도 피력했다.
▲최종후보지 평가기준에 '풍수'도 포함…가중치는 낮아
신행정수도 후보지 평가위원단은 29일 "후보지 4곳에 대한 평가가 이미 끝났다"고 밝혔다.
당초 7월 1일 예정이었던 최종 후보지 발표가 5일로 미뤄졌을 뿐, 윤곽은 벌써 나와있다는 얘기다.
이번 최종 후보지 선정을 위해 사용된 평가 기준은 크게 다섯 항목. 세부항목은 20개이며 항목마다 가중치가 다르다.
△국가균형발전(가중치 35.95) △국내외에서의 접근성(24.01) △주변환경에 미치는 영향(19.84) △삶의 터전으로서의 자연조건(10.20) △도시개발비용 및 경제성(10.00) 등이 기본 다섯 항목이다.
풍수와 관계된 기준은 이 가운데 '삶의 터전으로서의 자연조건'이라는 큰 항목 밑에 '배산임수(背山臨水)'란 명칭으로 포함돼 있다.
가중치는 총 100점 가운데 1.12점으로 세부 항목 중 가장 낮다.
▲권용우 평가위원장 "풍수지리도 비중있게 거론돼"
신행정수도 후보지 평가위원단 권용우 위원장. |
그러나 평가위원단 위원장을 맡고 있는 권용우(성신여대 지리학과) 교수는 "평가위원단엔 다수의 지리학자·지질학자·지형학자들이 포함돼 있다"며 "따라서 직간접적으로 풍수와 관계있는 얘기들도 비중있게 거론됐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서울은 조선 건국시 무학대사와 정도전이 전국을 샅샅이 둘러본 뒤 결정했을 정도로 풍수가 뛰어난 곳"이라며 "다만 도보 위주의 네트워크 중심이었던 600년전 교통 환경이 고려된 것이므로, 지금은 평가가 다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무학대사도 '좌청룡 격인 낙산이 약해 (조선의 운이) 500년은 가도 1000년 가긴 힘들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며 "사실 풍수지리는 권력을 쥔 자들의 상황논리에 따라 명분으로 내세워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권 교수는 그 예로 "당시 이방원의 책사였던 하륜이 지금의 신촌 지역인 '송학 천도론'을 폈지만, 태조 이성계는 장자 방원이 자신과 정적 관계라는 점에서 이를 부결시켰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공주-논산은 "계룡산 기(氣) 때문에 '군사대국' 가능성 크다"
그렇다면 2004년 대한민국 정권이 '정적'들의 반발을 무릅쓰며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행정수도 이전 후보지들의 풍수 조건은 과연 어떨까.
일부 풍수지리학자들이 후보지 4곳 가운데 가장 빼어난 산세(山勢)를 갖고 있는 것으로 꼽는 지역은 공주-논산 일대이다.
충남 공주 상월면 일대. 풍수학자들은 신행정수도 후보지 4곳 가운데 계룡산을 등에 지고 있는 이 지역을 '풍수적으로 산세가 가장 좋은 곳"으로 꼽고 있다. /최낙기 선문대 교수 제공 |
신행정수도 후보지 평가위원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두규(우석대 풍수지리학과) 교수는 "논산 상월면은 주산(主山)과 청룡백호가 뚜렷하며, 명당도 광활해 도읍지 후보로 적절하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주산으로만 보면 이곳의 계룡산이 가장 뛰어나다"며 "단점이 있다면 주산의 힘이 워낙 강해 살기마저 띠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풍수에서 가장 먼저 살펴보는 것은 땅의 기를 살펴 그 용도를 결정하는 일"이라며 "기가 강한 이 지역에 새 도읍이 들어설 경우 군사강국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목적실용위성 아리랑1호가 찍은 공주-논산 지역.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
최낙기(선문대 풍수 담당) 교수 역시 "후보지 4곳 중엔 상월면 지역이 가장 풍수적으로 결격 사유가 적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영남·강원과 멀고 호남쪽에 치우쳤다는 게 단점"이라면서도 "계룡산의 기가 강하지만 사방에 있는 산들의 기는 부드러워 서울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또 "약한 통치자가 들어앉으면 지도력이 강해지고, 옳은 방향의 정책들을 펴게 되는 곳"이라며 "반면 드러내놓고 강한 체하는 나라로 흘러갈 가능성도 생길 수 있는 입지조건"이라고 했다.
▲공주-연기는 "주산(主山)인 국사봉 약하고 범람 우려 많아"
후보지 4곳 중 유력한 최종 수도 이전지로 꼽히고 있는 공주-연기 지역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행정수도 이전 계획을 세웠을 때도 '천혜의 풍수 조건'을 갖췄다고 꼽혔던 곳이다.
그러나 이들 풍수지리학자의 최근 평가는 "전체적으로 답답하다"는 것.
김두규 교수는 "인구 50만을 수용할 만한 능력을 갖췄는 지 의문"이라며 "주산인 국사봉이 안산(案山)인 장군산보다 121m나 낮아 위엄이 없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다만 땅의 성격으로 봤을 때는 나라가 조화로운 민주 사회로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고 덧붙였다.
다목적실용위성 아리랑1호가 찍은 공주-연기 지역.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
최낙기 교수도 "손님격인 안산이 주인격인 주산보다 높고, 주산이 반듯하지 않다"며 풍수적으론 공주-연기 지역이 결격임을 시사했다.
최 교수는 "통치자가 '손님'의 기에 눌려 끌려다닐 위험이 있다"며 "또 주산이 나즈막히 뒤로 누워있는 형태라 나태해지기 쉽다"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국사봉 대신 연기군 남면 진의리에 있는 원수봉을 주산으로 삼는 게 풍수적으로 낫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두 학자는 장기면의 토질이 약해 침수 위험이 있으며, 연기군 남면은 수구(水口)가 열려 있어 범람 위험이 있다고 보고 있다.
최 교수는 "남면에 있는 백동(白洞)마을은 '허여 물'이라 불리던 곳"이라며 "이는 곧 물이 하얗게 고여 있던 습한 늪지임을 나타내준다"고 설명했다.
▲천안은 "북향(北向)이라 통치자 심성이 음흉해지기 쉬워"
신행정수도 후보지 가운데 한 곳인 천안 일대. 낮은 구릉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합 |
충남 천안시의 목천읍과 성남·북·수신면 일대에 대한 풍수학자들의 평가는 부정적인 편이다.
비교적 국토 중앙에 가깝고 명당이 넓다는 사실이 장점으로 꼽히지만, 산세가 너무 약한데다 북향(北向)이기 때문.
다목적실용위성 아리랑1호가 찍은 천안 지역.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
김두규 교수는 "백두대간의 큰 맥이 흘러들어와 좋긴 하지만, 남쪽에 높은 산들이 많아 건물들이 북향으로 들어서게 된다"고 말했다.
건물들이 북향으로 서면, 햇볕을 못 받아 전체적인 기가 차가워지고 심성 또한 음흉해질 수 있다는 설명도 뒤따른다.
최낙기 교수 또한 "주산인 백운산이 너무 약한데다 배후의 산들도 약한 게 문제"라며 "현재의 수도권과 너무 가깝고 이미 투기가 심하다는 현실적 문제점도 간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음성-진천은 "풍수로 봤을 땐 정부 선정 지역은 오류"
신행정수도 후보지 가운데 한 곳인 충북 음성군 맹동면 일대. /연합 |
음성-진천 지역에 대해선 풍수학자들의 평가가 엇갈린다.
'생거진천'(生居鎭川)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살아생전 머물만한 땅'이란 평가가 있는 반면, "이번 후보지 선정에 그냥 끼워넣은 듯 싶다"는 혹평도 따른다.
다목적실용위성 아리랑1호가 찍은 음성-진천 지역.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
최낙기 교수는 "정부 발표에서 이 지역을 너무 북쪽으로 잡았다"며 "맹동면 대신 이월면 쪽으로 자리를 잡아야 풍수가 좋다"고 설명했다.
김두규 교수도 "나즈막한 구릉지대라 기초공사때 일일이 땅을 절개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며 "왜 이쪽이 포함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입지만 잘되면 수도 이전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얘기도 바로 이런 부분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최낙기 교수 "기가 강한 盧대통령은 계룡산지역 선호 가능성 높아"
그렇다면 신행정수도 이전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은 이들 후보지 중 어떤 곳을 선호할까.
최낙기 교수는 "노 대통령이 십중팔구는 계룡산을 끼고 있는 공주-논산 지역을 선호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최 교수는 "노 대통령이 태어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엔 봉화산이라는 바위산이 있다"며 "이 바위산의 기가 엄청 강하다"고 했다.
즉 어린 시절부터 봉화산의 기를 보며 자란 노 대통령이 계룡산의 강한 기에 자신도 모르게 끌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
최 교수는 "노 대통령은 기가 매우 강한 사람"이라며 "이런 강기(强氣)의 통치자가 논산 상월면에 들어앉게 되면 나라는 군사대국으로 흘러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 계획대로라면 새 행정수도는 2007년 하반기에 공사를 시작, 2030년에야 건설이 완료된다.
이 기간 대통령 선거만 다섯 번이나 있으므로, 노무현 대통령이 새 청와대의 주인이 될 확률은 0%다.
▲김두규 교수 "금산에 터잡으면 스위스처럼 조용히 잘사는 나라될 것"
두 학자는 "사실 정부가 발표한 후보지 4곳보단 대전 이남의 금산·옥천·영동 등이 풍수적으로는 도읍지로 더 나은 곳"이라고 말한다.
김두규 교수는 사견(私見)임을 전제로 "개인 묘지를 쓸 때도 땅의 성격을 중요시하는데 하물며 한 나라의 수도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며 수도 이전의 역사적 중요성을 설명했다.
김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충남 금산 금성면일대에 도읍이 설 경우 한국이 정보통신대국으로 성장할 것으로 본다"며 "스위스처럼 조용히, 내실있게, 잘사는 나라가 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최낙기 교수도 "금산·옥천·영동은 모두 국토의 중심이자 토질도 좋은 곳"이라며 "주산도 수려하고 다른 도시들과 확연히 분리돼 장점이 크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한 나라의 수도 이전은 천년의 국운이 달린 문제"라며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두규 교수는 "지금은 50만명이 거론되지만, 백년 이백년 뒤 수도 인구가 천만명을 넘길 지 누가 알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은 도로 중심으로 접근성을 논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도로가 필요없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며 통시적(通時的) 사고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최창조 교수 "황천살(黃天煞) 낀 청와대만 분당으로 옮기면 끝날 일"
풍수학자들은 대체로 "서울만큼 풍수가 좋은 곳이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서울 동숭동)이 다소 약한 게 흠이지만, 주산인 북한산과 안산인 남산 그리고 우백호인 인왕산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
다만 "서울은 안산인 남산 뒤에 화기(火氣)가 아주 강한 관악산까지 버티고 있어, 통치자가 불처럼 강해질 수 있는 곳"이라고 최낙기 교수는 말한다.
그는 "주산인 북악산에서 우백호인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길에 한 곳이 끊겨 '풍'(風)이 들어올 수 있다"며 "자하문터널 근처가 바로 그곳"이라고 했다.
이때문에 청와대 터에 황천살(黃天煞)이 껴있다는 평가도 나온다는 것이다. 최낙기 교수는 "이회창씨가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 밖으로 나와 집무를 보겠다'고 얘기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풍수학계의 저명학자인 최창조(녹색대 풍수풍류학과) 교수도 청와대 터가 좋지 않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조선 정궁인 경복궁 자리가 풍수적으로 좋은 곳이며, 일제 총독이 선정한 청와대 터는 좋은 자리를 비껴나갔다는 것.
최창조 교수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의 청와대 터는) 전반적으로는 규모가 너무 작고 독불장군형"이라며 "눈앞에 장애물이 별로 안 보여서 '내가 끌고 나갈 수 있겠구나'라는 오만한 생각을 (통치자가) 갖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행정수도 이전엔 적극 반대하는 입장이다. 거론되는 후보지 4곳을 다 가봤지만 수도를 세울 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
최창조 교수는 "통일이 돼도 한반도에서 서울만한 위치는 절대 찾을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는 또 "청와대만 경기도 분당의 일해재단 터로 옮기면 될 일인데, 이런 낭비가 세상에 있을 수 없다"며 수도 이전 계획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천명을 주산 삼고 민심을 안산 삼아야"
신행정수도 후보지 평가위원 김두규 교수는 "수도 이전 후보지를 평가할 땐 풍수뿐 아니라, 수많은 척도들이 더욱 큰 가중치를 갖고 고려되고 있다"며 "국민들도 지나치게 풍수 위주로만 따져선 안 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김 교수는 또 "국민이 대통령인 참여정부에선 천명 자체가 바로 민심"이라고 말했다.
결국 수도이전 여부와 이전장소는 풍수도 정략도 아닌 민심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설명이다.
이재준 기자 zz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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