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안풍사건 자체가 사법적 차원을 넘어 정치적으로 갖고 있는 폭발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안풍사건의 향배에 따라 한나라당은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 있었다.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안기부 자금이 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전신)의 1996년 총선 자금으로 유입됐다는 혐의가 법원에 의해 인정될 경우 한나라당은 ‘국고횡령당’이란 오명을 벗을 수 없는 것은 물론 9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추징금을 물어야 한다.
따라서 문제의 자금 성격에 대해 “안기부 자금이 아니다”라고 판결한 것은 한나라당에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이와 함께 당시 안풍사건 수사를 벌였던 검찰과 이를 대야 공격 소재로 삼았던 여권은 후폭풍에 시달릴 공산이 크다. 실제 안풍사건의 덫에 걸린 한나라당은 2000년 16대 총선과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도덕성 시비에 휘말려 고전을 면치 못했었다.
한나라당은 이번 안풍사건의 무죄 선고에 대해 “여권의 정치 공작 실체가 드러났다”며 역공에 나섰다. 안풍을 포함해 ‘병풍(兵風)’ ‘총풍(銃風)’ 등 한나라당을 겨냥한 ‘3대 의혹사건’이 모두 무죄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만큼 “김대중(金大中) 정부에 의한 정치조작 사건”이 명백해졌다는 이유에서다.
박근혜(朴槿惠) 대표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안풍사건으로 인해 한나라당은 이미지에 큰 손실을 봤고 강삼재(姜三載) 전 의원도 큰 고생을 했다”며 “무죄 판결이 나 다행이다”고 말한 것도 그런 이유다.
안풍사건의 진상 규명에 주력했던 홍준표(洪準杓) 의원은 “(여권이) 지난 3년간 정권 재창출 목적으로 일으킨 총풍, 병풍, 안풍 사건이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며 “현 정권은 사기정권이며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완전히 안풍사건의 굴레에서 벗어났다고 단정하기엔 이르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책임론 불씨가 여전히 남아 있는 만큼 상도동의 반격 여부가 또 다른 변수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편 열린우리당은 곤혹스러워하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김갑수(金甲守) 부대변인은 “도둑질은 장소에 따라 면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20년간 모셨다는 주군이 대통령의 신분으로 어딘가에서 불법으로 조성했을 것이 분명한 엄청난 돈을 줘 선거에 불법으로 사용한 것이 과연 정의냐”라고 반박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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