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風사건 판결]“꼬리 자른다고 도마뱀 없어지나”

  • 입력 2004년 7월 5일 18시 54분


“도마뱀이 꼬리를 자른다고 혐의가 없어지지는 않으며 오히려 잘린 꼬리는 도마뱀이 현장에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일 뿐이다.”

‘안풍(安風)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5일 선고공판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재판부는 이날 비자금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명확히 결론내리지 않았지만 ‘도마뱀 꼬리 자르기’란 비유로 이 자금이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 비자금’이라는 분위기를 짙게 풍겼다.

재판부는 김기섭(金己燮) 전 안기부 운영차장이 도마뱀 몸통격인 김 전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꼬리격인 자신을 스스로 잘라낸 것으로 보는 듯하다. 김 전 차장은 “독자적인 판단으로 한나라당에 선거자금을 지원했고 강삼재(姜三載) 전 의원에게 돈을 직접 전달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김 전 차장의 주장에 대해 “궁극적으로 김 전 대통령을 보호하려는 진술”이라며 “이는 ‘손이 하는 일을 머리는 모르고 있었다’는 말과 같다”고 꼬집었다.

재판부가 김 전 대통령을 ‘재임 중 다른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거나 준 적이 없다는 불출석 사유서만을 제출하면서 법원의 소환에 불응한 사람’으로 표현한 것에서도 이런 인식이 드러난다.

전지성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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