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로 간 ‘만화방 만화’교사가 만들어 수업교재로

  • 입력 2004년 7월 6일 17시 33분


만화 ‘비트’(허영만)의 주인공 ‘민’은 사람다운 삶을 사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패자일 뿐인가? 이 작품에서 드러난 한국 교육의 문제는 무엇이며, 배우자를 통한 신분상승을 납득할 수 있는가? 이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비트’와 비교했을 때 매체 간 표현방식의 차이는?

‘공부의 방해꾼’으로 홀대받던 만화가 이제 학교로 들어왔다. 그 과정은 충남 천안시 천안중 국어교사 박경이씨의 ‘만화 학교에 오다’(우리교육)에 나와 있다. 천안여중과 천안중에서 만화를 수업교재로 사용한 저자는 이 책에 교직 경험에서 얻은 노하우와 학생들이 제출한 재기발랄한 과제물들을 담았다. 저자가 활용한 만화 중 교육적 가치가 높은 것들을 추려 만든 추천목록도 수록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박 교사가 교재로 쓰는 만화가 대부분 학습용이 아니라 만화 대본소에 있는 진짜 만화이고 수업의 눈높이도 중고생에 맞춰졌다는 것.

박 교사는 만화를 교재로 수업하면 학생들의 참여도가 크게 높아진다고 말한다. 학생들은 만화를 소재로 한 과제를 발표하다가 인기만화 이야기가 나오면 서로 격론을 벌인다. 야한 만화에 대한 느낌을 털어놓다 보면 어느새 성교육으로 이어지며 졸속 번역된 일본 만화에서 비문이나 맞춤법이 틀린 곳을 집어내기도 한다. 1컷 또는 4컷 짜리 시사만화를 소재로 수업하다보면 학생들이 시사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신문도 찾아 읽는다.

수업내용은 KBS 1 ‘도전! 골든벨’ 형식의 퀴즈 게임으로 점검한다. 쉬운 문제에서 시작해 ‘특정 인물이 어떤 행동을 한 의도는 무엇인가?’를 서술해야 하는 문제까지 난이도를 높여 나간다.

책에는 교내 만화반 운영의 경험담과 요령도 소개됐다. 1년 계획안과 캐릭터 모방, 선생님 캐리커처 그리기, 시사만화 창작, 작품집 만들기 등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추천만화 목록 중 ‘비트’나 ‘기생수’(이와아키 히토시) 등에 대해 선정성이나 폭력성 때문에 ‘성인용’이라고 명시하면서도 고교생 정도라면 토론의 소재로 삼을 만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책 서문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일생에 한 번 쓸까말까 하는 원색적인 말들이 총출동하고 잔인하기로도 만만찮은 ‘친구’ 같은 영화를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봤을 것이다. 그렇다고 ‘착하던’ 아이들이 이 ‘나쁜’ 영화 때문에 못된 아이들이 됐을까? 아이들은 ‘생각하는 힘’이 없는 존재들이 아니다.”

조경복기자 kathycho@donga.com

어릴 땐 이런 만화가 좋아요
분류작품(작가)
어린 시절, 그리고 성장‘짱뚱이’ 시리즈(오진희 신영식),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이희재), 17세의 나레이션(강경옥), 비트(허영만), 용(무라카미 모토카)
추리와 상상의 세계몬스터(우라사와 나오키), 마스터 키튼(가츠시카 호쿠세이, 우라사와 나오키), 기생수(이와아키 히토시)
꿈과 사랑을 나누어주는 전문가들의 열정유리가면(스즈에 미우치), 닥터 노구찌(무츠 도시유키), 여검시관 히카루(고다 마모라), 블랙직(데즈카 오사무)
삶, 그 일상의 모습좋은 사람(다카하시 신), 십시일反(박재동 외), 디스(문흥미), 비빔툰(홍승우)
인간과 사회, 종교, 역사북해의 별(김혜린), 신의 나라 인간 나라(이원복), 묵공(모리 히데키), 침묵의 함대(가와구치 가이지), 쥐(아트 슈피겔만), 오! 한강(허영만)
기타곤(다나카 마사시), 프리스트(형민우), 윤희(황미나), 툰(박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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