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참아요”…서민 빠듯한 살림에 병원-약국 잘 안가

  • 입력 2004년 7월 9일 19시 16분


《“아파도 참아요.” 경기불황이 장기화됨에 따라 서민들이 몸이 아파도 병원을 찾지 않고 억지로 참는 사례가 일반화되고 있다. 이처럼 ‘억지로 버티는’식의 질병에 대한 대응 탓으로 병원과 약국들은 “감기 등 가벼운 질병을 앓는 환자들의 발길이 아예 끊어졌다”고 울상이다. 》

본보 취재팀의 현장 취재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대형병원들은 입원환자가 20∼30%가량 감소했으며, 일부 동네의원은 60%까지 환자가 줄었다는 곳도 있었다.

입원환자들 역시 어떻게 하면 경제적인 부담을 줄일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비용이 저렴한 보건소를 찾는 사람은 지난해에 비해 30% 이상 늘어났다.

▽병원=7일 서울 은평구 C병원. 한 50대 남성과 의료진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초음파검사는 의료보험이 안 돼요? 검사비가 비싸겠네. 그러면 검사 안 받으렵니다.”

의사가 “간을 살펴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검사”라고 설득했지만 환자는 막무가내였다.

이 병원 전모 주임(36)은 “경기가 나빠지면서 최근 내원환자 100명 중 20∼30명은 아예 돈이 드는 검사는 안 받겠다고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모 대학병원 김모 과장(43)은 “병원비 깎아 달라는 하소연을 안 듣는 날이 하루도 없다”며 “매몰차게 조기퇴원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난감하다”고 말했다.

D병원은 현재 입원환자 210여명 가운데 200만∼700만원까지 치료비가 연체된 환자가 10명이 넘는다. 원무부 신모 부장(44)은 “올해 들어서만 환자 10여명이 경제적인 문제로 입원비를 안 내고 ‘야반도주’했다”고 밝혔다.

▽약국=“지난해만 해도 하루에 처방전이 100장 정도는 들어왔는데 요즘은 겨우 50장이 될까 말까 해요.”

서울 강북구 W약국 약사 정모씨(35)는 “하루나 이틀치 약을 지어 가는 경증 환자가 거의 없다”며 “불황이 이어지다 보니 몸 아픈 데 쓰는 돈마저 아끼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동대문구 K약국 약사 김모씨(43)는 “요즘은 하루종일 파리만 날린다”며 “진료비를 아끼기 위해 1∼3개월짜리 장기처방전을 받아 오는 환자가 드문드문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은평구 H약국 약사 박모씨(48·여)는 “한때 ‘웰빙’ 바람을 타고 잘 나갔던 영양제나 비타민제도 하루에 한 개 팔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보건소=진료비와 약값이 비교적 저렴한 보건소는 환자가 지난해에 비해 30∼40%가량 증가했다.

마포구보건소 관계자는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보건소로 오는 환자들이 꽤 있다”고 귀띔했다.

주부 김모씨(56·경기 광명시 철산동)는 “식비도 줄이는 마당에 병원비는 가계에 큰 부담이 된다”며 “당뇨병으로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오다 최근 보건소로 옮겼다”고 말했다.

특히 영·유아접종을 위해 보건소를 찾는 젊은 엄마들이 크게 늘어났다.

강북구보건소 영·유아접종실 권미옥 실장(46·여)은 “일반 병원에서 3만∼4만원을 받는 예방접종이 보건소에서는 무료”라며 “지난해에는 매달 평균 60여명이 접종했는데 최근에는 10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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