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다음 날은 늘 어두운 얼굴이었어요. 이따금 라운지에 내려와 혼자 아침을 드실 때도 고민이 많아 보였습니다. 좋은 기억을 채워 드리지 못한 것 같아서 지금도 많이 안타까워요.”
프레이저스위츠 객실부 이윤지 주임(33·여)의 말이다.
프레이저스위츠는 최고급 주거서비스에 커뮤니티의 특성을 접목한 이른바 서비스드 레지던스(Serviced Residences). 1988년 스위스그랜드호텔이 첫선을 보인 이후 프레이저스위츠, 그랜드힐튼 등 외국계 체인과 휴먼터치빌, 로얄팰리스 등 국내 업체들이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레스토랑, 피트니스센터 등 호텔의 일반 시설은 물론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도록 주방, 세탁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월 700만∼800만원 선의 만만찮은 이용료에도 불구하고 많은 외국인들이 ‘집 같은 환경’을 찾아 이런 시설로 몰린다.
주요 고객은 외국 기업의 한국주재원.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까지 서울에 머무는 이들이 한국에서의 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각 레지던스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제공하고 있다.
“서구 사람들은 어딜 가든 혼자 떨어져서 활동하기를 좋아할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에요. 누구나 타지에 나와 있으면 외로울 수밖에 없죠. 그 외로움을 풀어 주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주는 게 최선입니다.”
프레이저스위츠가 내세우는 차별 요소는 직원-고객 교류 프로그램. 이 주임은 고객과 직원이 가족처럼 스스럼없이 어울려 지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공동활동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을 맡고 있다.
매달 인근 초등학교나 한강변의 축구장에서 벌어지는 고객팀 대 직원팀간의 축구경기는 2002년 월드컵 열풍이 한창일 무렵 동네 조기축구에 착안해 이 주임이 내놓은 아이디어.
축구경기 후에는 고객과 직원이 어울리는 즐거운 피크닉 시간을 마련한다. 주부 고객을 대상으로 한 한국요리 한국어 강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아줌마 손님들과 함께 서울 종로구 인사동 전통찻집에서 수다를 떠는 시간도 중요한 일과”라는 이 주임이 서울을 찾은 이방인 고객에게 가장 먼저 전하는 것은 다름 아닌 서울의 ‘인심’이다.
“한국인에겐 따뜻한 본심을 감추고 외국인을 무뚝뚝하게 대하는 습관이 있는 것 같아요. 멋진 문화유적과 화려한 행사도 중요하지만 방문자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 것은 따뜻한 정일 겁니다.”
이 주임은 주부 고객들에게는 인사동에 가서 ‘깎아 주세요’라는 말을 한번 건네 보라고 조언한다. 무뚝뚝한 긴장을 벗어 던진 정겹고 소박한 웃음이 외국인에게 보여 주고 싶은 서울의 진실한 표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손택균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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