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은행 노사는 12일 오후 7시부터 열린 노조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1256명(74.8%)이 찬성해 노사합의안이 가결됐다고 이날 밝혔다.
노사 합의안은 월 기본급의 400%에 해당하는 보상 및 위로금(보로금) 지급과 사무직군제 3년 내 폐지 등 15개 합의사항을 담고 있다.
한미은행 노조가 지난달 25일부터 이날까지 벌인 파업일수 18일은 은행 파업 사상 최장 기간이다.
최종 협상에서 노조는 고용보장과 근로조건 개선 등 ‘실리’를 최대한 얻어냈고 은행측은 경영권에 대해 노조와 협상할 수 없다는 ‘원칙’을 지켰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그러나 이번 파업으로 은행의 기업가치가 떨어졌고 국가이미지도 실추되는 등 많은 후유증을 남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조는 실리, 은행측은 원칙=노사 협상이 최종 타결된 것은 양측이 기존 주장에서 한 발씩 물러선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노조는 사측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 사항을 막판에 포기했다. 노조는 ‘국부(國富)유출 금지’ ‘독립경영 보장’ ‘상장폐지 철회’ 등 경영권 및 주주권 관련 사안에 대한 요구를 사실상 철회했다.
노조는 또 임금인상과 비정규직 처우개선 등 ‘금융권 공동임금 및 단체협약(공단협)’ 관련 사안을 미리 합의하자는 요구도 거둬들였다.
대신 고용 불안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보장을 받아냈다. 단순 사무직과 일반직을 차별하는 사무직군제 폐지와 자동호봉승급제 도입 등 실질적인 근로조건 개선 조치를 보장받았다.
노조는 당초 조합원 1인당 3년치 월급(36개월)에 해당하는 합병 보로금 지급을 주장했다가 철회했으나 최종 협상에서 월 기본급의 400%라는 금전적 보상도 얻었다.
은행측은 “양보할 것은 양보하겠지만 경영권과 주주권 관련사안 및 공단협 관련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원칙을 지켰다.
한미은행 박진회(朴進會) 부행장은 “단기적인 비용을 들이더라도 경영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파업 장기화에 따른 손실 크다=한미은행의 영업 정상화와 함께 그동안 중단됐던 씨티은행 서울지점과의 통합 작업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사 양측은 파업 장기화 및 해결 과정에서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은행파업사상 최장기 기록을 경신하면서 수익의 기반인 고객의 신뢰가 크게 떨어졌다. 지난달 25일 파업 시작 이후 이달 9일까지 한미은행에서는 2조5051억원의 돈이 빠져나갔다.
이번 사태는 또 한국의 은행 합병에는 반드시 노조의 파업이 따른다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 한 시중은행장은 “노조가 씨티그룹을 상대로 ‘국부유출 금지’ 등을 외쳐 외국인투자가들이 한국에 대한 불신감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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