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도 되나요, 당신의 中國語”…자격시험 불법-편법 난무

  • 입력 2004년 7월 14일 18시 49분


《갈수록 ‘중국어 배우기’ 열풍이 강해지는 가운데 유일한 중국어 공인자격시험인 ‘중국한어수평고시(HSK)’가 위조성적표 난무와 기출문제 유출 때문에 공정성 시비에 휩싸이는 등 신뢰를 잃고 있다. 중국국가한어수평고시위원회가 주관하는 HSK는 국내 기업의 취업과 승진, 중국 대학 진학 등을 위해 1년에 2만명 이상이 국내와 중국 현지에서 응시한다. 국내 주요 대학도 일정 등급 이상의 HSK 성적을 가진 학생들을 특별전형으로 선발한다. ‘중국어 토플’로 불리는 이 시험은 중국과 27개국에서 1년에 3, 4차례 치러진다.》

▽위조성적표=취업을 위해 올해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한 A씨는 HSK를 수차례 보았으나 원하는 등급을 얻지 못했다.

A씨는 고민하던 중 “돈만 주면 정교하게 위조된 성적표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중국인 친구의 말을 듣고 유혹에 빠진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중국 베이징(北京)의 대규모 전자제품상가인 중관(中關)촌과 야윈(亞運)촌 일대에 한국인을 대상으로 보통 1000위안(약 15만원)을 받고 정교한 위조성적표를 만들어주는 중국인들이 모여 있다는 것. 한국인 어학연수생들이 주로 거주하는 하숙집 주인들이 성적표 위조업자를 알선하기도 한다.

국내 유명 중국어학원의 관계자는 “위조성적표는 이미 학생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며 “위조성적표는 주로 검증이 소홀한 중소기업의 입사나 학원강사 선발 때 이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시험관리 엉망=HSK를 준비하는 응시자들은 시험마다 기출문제의 출제비율이 30∼40%에 이른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9월 한국에서 치러진 시험 문제는 특정 문제집에서 그대로 발췌됐는가 하면 같은 해 11월 시행된 시험 문제는 중국에서 4개월 전 실시된 시험 문제와 거의 같게 나와 파문이 일기도 했다.

특히 중국에서 출제된 문제가 다음 번 한국 시험에 출제된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 이에 일부 학생들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면서 시험을 보기도 한다. 국내 일부 중국어 강사들 역시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HSK를 신청한 뒤 문제만 외워 기출문제집을 만들어 학원 교재로 쓰고 있다.

한국에서 출제된 문제 역시 하루만 지나면 인터넷상에 그대로 유출되고 있다.

중국국가한어수평고시위원회는 뒤늦게 올해 초 ‘60일 이내에는 시험에 재응시하지 못한다’는 규정을 만들었지만 부작용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

시험관리도 엉망이다. 당초 국내에서는 9월 12일 시험을 치르기로 예고됐으나 고시위원회에서 아무 이유 없이 10월 3일로 연기했다.

하지만 편법을 동원해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중국 유학을 포기하고 귀국한 정모씨(26)는 “단순히 HSK 등급을 얻어 중국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지만 입학 뒤 어학 때문에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유학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한국HSK실시위원회 위원장인 충남대 홍순효(洪淳孝·중문학) 교수는 “성적표 위조나 기출문제 유출 때문에 중국 정부도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며 “한국 내에서도 관리감독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세진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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