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대법관 가운데 최초로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무죄 취지의 의견이 나오고, 6명의 대법관이 대체복무 인정의 필요성을 공식 언급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판결의 내용과 의미=유죄 취지의 다수 의견은 헌법 제19조가 보장하고 있는 ‘양심의 자유’를 두 가지로 나누어 판단했다. ‘내심(內心)의 양심 형성의 자유’와 ‘양심 실현의 자유’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전자는 제한할 수도, 제한할 필요도 없는 절대적 자유라고 보았다.
▶ 양심적 병역거부는 ‘ 유죄’ 찬반논란(Poll)
그러나 양심 실현의 자유는 다르다. 그 실현 과정에서 헌법의 다른 법익과 충돌할 경우 제한이 가해질 수 있는 ‘상대적 자유’라는 것이다. 다수 의견은 또 헌법 제39조가 규정하고 있는 병역의 의무도 궁극적으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병역의 의무를 근거로 양심 실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헌법상 정당한 제한이라는 논리다.
무죄를 선고했던 하급심 판결이 ‘개인의 내적 가치’를 우선했다면 대법원은 사회질서 유지와 공동체의 조화, 국가의 존립에 더 큰 가치를 부여했다고 볼 수 있다.
▽판결의 영향=대법원 판결은 해당 사건에 대해서는 법적 구속력을, 다른 하급심 사건에 대해서는 선례(先例)적 구속력을 지닌다. 이에 따라 현재 여러 법원에 계류 중인 사건도 이번 대법원 판결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대법원 스스로 이 판결을 바꿀 수는 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이 문제에 관한 최초의 전원합의체 판결인 데다 상당한 사회적 논란을 거친 후 내려진 것이어서 앞으로 상당기간 바뀌기 어려울 것이라고 대법원 관계자는 설명했다. 대법원은 연간 2만여건의 사건을 처리하지만 전원합의체 판결은 10건 안팎에 불과하다.
또 다른 가능성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다. 현재 헌재에는 병역법 관련 조항에 대한 위헌심판 제청 사건이 계류 중인데,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 법 자체가 효력을 상실하므로 대법원의 법 해석도 무의미해진다. 그러나 헌재도 통상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위헌 결정 가능성은 높지 않다.
▽소수의견 및 대체복무제 필요성 제기=유일하게 무죄 취지의 소수 의견을 낸 이강국 대법관은 “종교적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피고인에게 형벌을 내리면 피고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국가는 양심의 자유와 병역의 의무를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하는 헌법적 의무와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다하지 않은 경우 불이익은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며 ‘국가의 태만’을 질타했다. 대법관이 이 같은 취지의 의견을 낸 것은 처음이다.
대법관 12명 중 6명이 보충의견 또는 반대의견을 통해 대체복무제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 유지담 대법관 등은 보충의견을 통해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반대의견에 동의한다”면서 “하지만 대체복무제 도입을 국가의 헌법적 의무로 보기 어려워 피고인에게 병역법을 적용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수형기자 sooh@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