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아보니]다이애너/한국차는 깜빡이가 없나?

  • 입력 2004년 7월 16일 18시 44분


한국에 사는 외국 여성으로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주변에 있는 다른 외국 여성들에게 한국생활의 애로사항에 대해 물어보면 거의 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교육 및 의료시설 부족, 의사소통 곤란 등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대다수는 해외생활을 오래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이런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대처방안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 불편함을 외국문화를 접하는 즐거움에 따르는 일종의 ‘비용’으로 감수하면서 자신만의 해결책을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교통문제만큼은 예외다. 한국의 교통질서는 혼란을 넘어 무섭기까지 하다. 서울 거리에 차를 몰고 나갔다가 진땀을 흘린 경험담을 한두 개씩 갖고 있지 않은 외국 여성이 드물다. 한국 여성도 운전하기가 쉽지 않은데 하물며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지리에도 익숙하지 않은 외국 여성은 어떠하랴. 물론 ‘자신 없으면 차를 몰고 나오지 말라’고 반박하면 할 말은 없다.

2002년 처음 서울에 온 뒤 나는 한동안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외국에서 쓰던 운전면허증을 한국면허증으로 바꾸는 데에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남편 직장을 따라 유럽과 아시아에서 10년 넘게 산 나는 한국 지하철의 편리함에 놀랐다. 영어 안내문이 잘 갖춰져 있고 승차권 사용법도 간단했다. 사람들도 친절했다. 혼잡한 시간만 피하면 지하철을 타는 것은 유쾌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간혹 산책을 하고 싶을 때면 롤러블레이드를 갖고 한강 둔치로 나갔다. 자전거 도로와 보행자 도로가 잘 닦여 있었고 곳곳에 안내 표지판도 설치돼 있었다. 시원한 한강 바람을 맞으며 롤러블레이드를 타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 길을 양보해 주며 인사를 건넸다.

한국 운전면허증을 손에 쥐자마자 나는 시험운전에 나섰다. 자동차 운전도 지하철이나 롤러블레이드를 타는 것만큼 쉬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오산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교통신호는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는 듯했다. 신호등이 빨간 불로 변했지만 자동차들은 꼬리를 물고 진입해 다른 방향 차들의 진행을 막는다. 택시는 차도 한복판에서 손님을 내려놓고, 버스 차로를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차로를 바꿀 때 깜빡이를 거의 켜지 않는 자동차들을 보고 ‘한국 차들은 깜빡이가 없나 보다’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의 편의를 위해 교통신호를 무시하는 이 사람들이 지하철과 한강변에서 마주쳤던 그 사람들이란 말인가. 친절한 사람들도 일단 자동차 핸들을 잡게 되면 ‘예절’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리는 듯했다. 한국인 친구들은 “남들이 그러니 나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교통질서를 지켜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남들도 어쩔 수 없이 따라하지 않을까.

다이애나 시하퍼 주부

약력 : 미국 출생으로 다국적기업의 간부인 남편을 따라 독일 프랑스 홍콩 등지에서 살았다. 2002년 4월 한국에 온 그는 현재 주한 외국 여성들의 자선단체인 ‘서울국제여성협회(SIWA)’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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