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엔…]동아일보로 본 7월 넷째주

  • 입력 2004년 7월 18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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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해외유학이 지도층 자제들의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던 현상을 보다 못한 이승만 대통령은 징소집 대상자의 해외유학을 중지하라고 지시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제2국민병 대상자들이 신체검사에 임하는 모습.-병무행정사 자료사진
1950년대 해외유학이 지도층 자제들의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던 현상을 보다 못한 이승만 대통령은 징소집 대상자의 해외유학을 중지하라고 지시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제2국민병 대상자들이 신체검사에 임하는 모습.-병무행정사 자료사진
▼해외유학 중지… 徵召集 해당자▼

국방부 고위당국자가 시사한 바에 의하면 정부는 징소집 해당자의 해외유학을 중지하는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는 李 대통령 유시에 의한 것인데 李 대통령은 주무부처인 國防 外務 文敎 등 三장관에게 특별유시를 내려 근래에 와서 해외유학생의 자격심사가 극히 무질서해지고 해외유학생은 일부 고관들과 유력층 자제에 의하여 독점되고 있다는 바 이러한 폐단이 없도록 자격시험을 엄격히 할 것이며 특히 징소집 해당자의 해외유학은 병력 확보의 긴요성에 감하여 가급적 중지할 것이며 최소한 유학생으로서 자격은 대학졸업자 이상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한다.한편 금년도에 들어 징소집 해당자가 해외에 유학이 허가된 수는 三백四십一명이라고 한다.

<1954년 7월 20일자 동아일보에서>

▼권력-부유층 유학빙자 병역기피 방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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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해외유학을 하고 돌아와도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유학생들이 넘쳐나지만 1950년대의 해외유학은 보통 사람들로서는 감히 꿈도 꾸기 힘든 일이었다. 위 기사 내용처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징소집 대상자의 해외유학을 가급적 중지하라고 특별 지시한 까닭은 당시 해외유학생의 대부분이 권력층 부유층 자제들이었고, 유학을 빙자해 병역 의무를 기피하는 사례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지도층의 솔선수범을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당시에도 문제였던 것이다. 국방부는 1956년 ‘외국유학 허가 취급요령’을 만들어 군복무를 하지 않은 사람은 해외유학 허가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이런 조치가 효력을 발휘했는지 51년 128명, 52년 403명, 53년 631명, 54년 1129명 등으로 급증하던 해외유학생 수가 그 뒤 내리막길에 접어들어 59년에는 418명으로 줄어들기도 했다.

70년대 들어 해외유학은 다시 활성화됐다. 경제 개발과 함께 해외유학을 통한 고급 인력 확보가 정책적 과제로 대두됐기 때문.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 일체의 경비를 국가가 부담해 유학 보내는 국비유학제도도 이 시기에 도입됐다. 81년에는 해외유학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면서 유학자격시험이 폐지되고 유학 절차가 간소화돼 연평균 유학생 수가 7000명 선을 넘어서기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의 병역기피를 막기 위해 여러 형태의 특별병역관리제도도 시행됐다. 하지만 지금도 선거 때마다 고위층 자제의 병역기피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아직은 거리가 먼 일인지도 모르겠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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