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수도 이전 문제에 대해서는 재검토 여론을 묵살하고 거세게 밀어붙이는 정부가 원전센터 건립에는 소극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어 대조적이다. 이 때문에 국가를 위해 더 시급한 국책사업으로 꼽히는 원전센터 건립 사업이 장기 표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 “총대 메기 싫다”=시장 군수들이 원전센터 예비신청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보다 ‘부안사태 학습효과’ 때문. 지자체장이 일부 주민의 의견만 믿고 예비신청을 했다가는 대규모 소요사태와 퇴진 압력을 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강수(李康洙) 전북 고창군수는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원전센터를 유치하려던 부안군수는 현지에서 밥도 못 먹고 산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누가 총대를 메겠느냐”고 털어놨다.
부안사태 이후 원전센터 건립 여부가 전적으로 지자체의 선택에 맡겨진 것도 사업 진척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작년 말 원전센터 후보지를 추가 접수키로 하면서 주민 청원서 제출→지자체장 예비신청→주민 찬반 투표 및 본신청→부지 최종 확정의 수순을 밟도록 했다.
명분은 정부가 원전센터를 강행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지만 사실상 정부가 부지 선정 과정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지자체장들이 직접 지역 주민간 이견을 조정하고, 유치 신청에 따른 모든 책임을 지게 됐다.
유병호(兪炳晧) 강화군수는 “정부 지원이나 홍보가 없어 원전센터 찬성측은 전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반면 반대하는 측은 갈수록 조직화되고 있어 군수가 나설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여기에 부안 문제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점도 문제다. 부안군은 사실상 원전센터 후보군에서 떨어져 나갔지만 명목상으로는 이미 예비신청을 접수한 지역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 때문에 다른 지자체들은 예비신청을 해봤자 부안군의 ‘들러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의혹도 갖고 있다.
▽올해 지나면 더 어렵다=지역별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부안사태에서 정부가 지역민의 여론을 무시한 채 밀어붙였다는 비난을 받은 데다 윤진식(尹鎭植)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이 문제로 낙마(落馬)한 경험도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조석(趙石) 산자부 원전사업지원단장은 “부안사태에서도 나타났듯 정부가 앞장서면 사업을 강행한다는 비난을 받게 되고 지역민들의 불신만 쌓인다”며 “지금은 홍보도 거의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현 정권이 과거 정권처럼 대충 덮어두는 식으로만 대응해 정말 중요한 국책사업의 시기를 놓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2008년이면 울진원전의 폐기물 저장 용량이 포화되는 상황인데도 정부가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며 “수도 이전 문제와 이라크 파병 등으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고조되고 있어 원전센터 부지 선정 문제는 미루겠다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더욱이 원전센터 부지 선정이 내년으로 미뤄지면 2006년 지방선거로 인해 지자체장들이 더욱 몸을 사릴 가능성이 높다. 또 2007년에는 대통령선거도 예정돼 있다. 이에 따라 이 문제가 올해 안에 해결되지 않으면 다음 정권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고 정책의 신뢰성도 더 떨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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