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의 신경정신질환 병력에 주목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끔찍한 범행과 병력이 관계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과 전문의로서 단언하건대 그의 병력과 이번 범죄는 무관하다.
필자는 이번 사건으로 많은 신경정신질환자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모두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힐까 걱정된다. 살인범이 앓았다는 ‘간질’의 경우 치료를 적절히 받으면 반사회적 행동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5년간 1000명의 범법자를 조사한 한 연구에서도 간질 환자는 4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그들이 저지른 범죄도 반사회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이번 살인극은 발작에 따른 우발적 범행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살인범은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보도를 통해 본 그에게서 죄책감은 보이지 않았다. 도덕이나 양심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신의학에서는 이를 ‘반사회적 인격 장애’라 부른다.
따라서 이 범죄를 특정 질환 탓으로 돌리면 안 된다. 이미 이 부류의 질환자들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신경정신질환을 언급하는 것은 사회의 편견을 조장할 뿐 아니라 환자들을 두 번 울리는 행위다.
사실 반사회적 범죄는 개인의 질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병리현상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평소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갖추는 게 시급하다. 교도소 역시 범죄자를 격리시키는 장소가 아니라 인격을 복원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
범행 방법을 자세하게 보도하는 것도 좋지 않다. 청소년들의 모방 범죄를 부추길 뿐 아니라 반사회적 성향을 은연중에 심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종민 인제대 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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