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석방된 송두율씨(왼쪽)가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부인 정정희씨와 함께 환영나온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하고 있다. -박영대기자
▽주요 혐의 대부분 무죄=재판부는 송씨가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돼 반국가단체를 위한 지도적 임무에 종사하고 △김일성(金日成)주석 장례 참석 및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에게 3차례 축하편지를 발송했으며 △통일학술회의 개최 준비 및 참가를 위해 입북한 부분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먼저 송씨의 검찰 진술이나 황장엽(黃長燁)씨의 진술, 송씨와 관련된 대북보고문 등으로는 송씨가 후보위원으로 선임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검찰 조서의 경우 검사는 송씨를 후보위원으로 단정하고 신문하고 있지만 송씨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는 것. 또 북한 인사들에게 전해들은 내용인 황씨의 진술은 추상적이거나 송씨의 후보위원 선임 여부를 알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서 들은 내용이어서 증거가 안 된다고 재판부는 보았다. 북한이 공식적인 선출이나 공표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은 것도 송씨를 후보위원으로 보기 어려운 점이라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송씨의 저술 활동 역시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송씨의 저술 활동이 북한에 편향된 점은 인정되지만 우리나라의 안전이나 체제까지 위협하는 내용은 아니라는 것. 또 국내 유력 일간지나 잡지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주장한 내용이기 때문에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충분히 여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송씨가 김일성 주석 장례식에 참석하거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생일 축하편지를 보낸 것도 의례적인 것에 불과해 그 자체로 국가의 존립이나 안전을 명백히 해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통일학술회의 부분 역시 개최 목적이나 경위, 진행 과정, 송씨의 역할 등을 모두 고려할 때 마찬가지라고 재판부는 밝혔다. 오히려 통일학술회의는 남북 이해 증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반면 1심 재판부는 송씨가 ‘김철수’라는 가명으로 후보위원으로 선임됐으며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저술 활동을 통해 주체사상을 전파하는 등 지도적 임무를 수행했다고 판단해 유죄를 선고했었다.
한편 재판부는 송씨가 91∼94년 5차례에 걸쳐 입북해 북한 당국자들을 만나 주체사상을 교양학습한 것은 대남공작과 북한 체제 유지를 위한 것으로 보고 유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또 송씨가 노동당에 가입한 뒤 북한과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김철수라는 가명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인정되는데도 이런 사실을 전면 부인하며 황씨를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은 법원을 속이려는 사기 의도가 있었다고 보고 유죄 판결했다.
▽판단 기준과 배경=이번 판결에는 국가보안법의 적용을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재판부의 의지가 깔려있다. 국가보안법상 ‘지도적 임무 종사’ ‘목적 수행’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등의 표현은 다의적이고 포괄적이기 때문에 엄격한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 국보법 1조2항도 ‘이 법을 해석 적용함에 있어서는…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며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지도적 임무 종사자로 인정되는 사람을 북한의 간부에 준해 처벌하도록 한 것도 그 행위가 우리나라에 명백한 해악을 줄 때에 한해 엄격하게 적용하라는 취지라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송씨의 행위가 ‘국가의 존립이나 안전, 민주주의 기본 질서에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게 재판부의 최종 판단이다.
재판부는 이어 “남북화해의 상황에서 이 사건이 걸림돌이 되고 이념 논쟁과 국론 분열의 씨앗이 되고 있는 만큼 이를 푸는 한편 자유정신과 동포애로 포용하는 쪽이 국가 발전과 평화통일에 도움이 된다는 점도 고려됐다”고 밝혔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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