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안팎에선 수사 전문인력 양성이 절실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지만 일선 수사경찰들의 반응은 의외로 냉소적이다. ‘수사 전문인력 양성론’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꾸준하게 제기된 경찰의 과제였지만 대형 사건이 날 때마다 단골 메뉴처럼 등장했을 뿐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 경찰관은 “현재의 경찰조직 내에서 수사형사란 총 잡는 법만 알려주고 전장으로 투입된 학도병과 다를 바 없다”면서 “수사부서는 승진 후생복지 등 모든 분야에서 소외된 경찰 내부의 섬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부족한 전문수사관=올 초부터 서울 서남부지역에서 잇따라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은 서울 전역의 강력반 형사들을 거의 모두 동원해 수사에 나섰다. 범죄 발생지역의 모든 집을 하나씩 방문하는 인해(人海)전술도 폈지만 성과는 전혀 없었다.
이 같은 인해전술식 수사는 과도한 초과근무로 이어지고, 이는 수사부서를 기피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의 수사경찰은 총 1만6211명. 이는 전체 경찰관(9만2165명)의 17.5%다. 하지만 수사경찰의 59%가 경력 5년 미만이다. 10년 이상 경력을 가진 베테랑 수사경찰은 2002년 19.5%에서 지난해 15.6%로 줄었으며 해마다 이 비율은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경찰은 수사경찰의 승진체계를 일반 경찰관과 달리 관리하는 ‘수사경과(警科)제’를 도입할 방침이다. 뛰어난 전문 수사인력을 양성하려면 수사인력을 늘리고 인사 혜택 등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과학수사에 대한 투자 부족=무동기 살인 등 최근 발생하고 있는 강력 범죄에 대처하려면 선진국에선 이미 정착된 ‘프로파일링(Profiling)’ 수사기법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범죄자 프로파일링이란 범행 현장 분석을 통해 범죄자의 성격, 행동 패턴, 직업, 거주지 등 범인과 관련된 특정 요소를 추출하는 수사기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고도의 심리분석 능력을 지닌 전문가와 수사경찰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경찰청 과학수사과는 이를 위해 7월부터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강력범죄자 체포프로그램(VICAP)과 유사한 범죄분석팀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과학적 분석을 통해 기존 수사자료를 검토하고, 피의자에 대한 성격 평가 등을 통해 사건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아 전국 각 지방경찰청에는 이 같은 팀을 설치하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경찰청 범죄분석팀도 활동 범위를 넓히지 못하고 있다.
수사시스템 개선과 수사역량 강화도 필수불가결한 과제지만 무동기 살해사건이 계속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을 따져 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최응렬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여성이나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불우한 이들이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무작정 사회에 원한을 갖는 무동기 살해사건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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