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2월 중순 오전 2시경 서울 송파구 잠실동 다세대주택 반지하방. 94년 5월 가출한 김모양(당시 15세)은 같이 지내던 비슷한 나이의 원모씨(27) 등 남자 4명, 김모씨(26) 등 여자 3명에게 9시간 동안 주먹과 발, 나무막대기 등으로 두들겨 맞다 숨을 거뒀다.
취객을 상대로 속칭 ‘아리랑치기’를 하며 생활비를 벌던 이들은 일수로 살던 방에서 34만원이 사라지자 김양이 훔친 것으로 생각했던 것.
이들은 겁이 나 범행을 숨기기로 했다. 시장에서 도구와 가방 등을 사와 김양의 시신을 토막내 가방에 넣었다. 남자 4명은 가방을 들고 서울 강남구 수서동 광평교 밑으로 가 모래흙을 손으로 파고 시신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지른 뒤 흙으로 덮었다.
이들은 ‘잘 가라’며 절까지 하고 반지하방으로 돌아온 뒤 곧바로 뿔뿔이 흩어져 연락을 끊었다. 하지만 죄책감은 이들을 끝까지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원씨는 “시신을 내 집 앞에 묻었기 때문에 무서워서 2년간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원씨는 비가 내리면 시신이 묻힌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또 다른 원모씨(27)는 직장 동료들과 술을 마시다 만취하면 “내가 사람을 죽였다”며 울먹였다.
김씨는 술에 취하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씨는 술이 깬 뒤 어머니가 “자수하라”고 말하면 “영화에서 본 이야기를 했다”고 둘러대기도 했다.
남모씨(26·여)와 신모씨(27·여)는 “이제야 10년 동안의 짐을 벗게 돼 홀가분하다”고 눈물로 참회했다.
이 사건은 서울 서남부 일대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던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에 의해 실체가 드러났다. 경찰은 ‘여중 3년생이 예전에 토막살해됐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 끝에 김양의 신원을 확인하고 당시 김양과 어울리던 이들을 찾아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 이동호·李東浩)는 원씨 등 7명을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했다고 22일 밝혔다. 이들 가운데 유모씨(27)와 홍모씨(26)는 조직폭력에 가담한 혐의 등으로 현재 구속 중이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정세진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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