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은 ‘중도(中道)’를 걸어야 하는데 일부 판결은 이와 거리가 먼 것 같다는 게 강 법원장의 지적이다. 그가 최근 판결이 일부 진보적 시민단체의 ‘입맛대로’ 내려진다면 공정성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윤관(尹관) 전 대법원장은 “법관은 자기로부터도 독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법원장의 지적은 최근 판결이 법관 자신의 경향이 아닌 법적인 판단에 따라 이뤄지고 있느냐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울고법은 21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7년이 선고된 재독학자 송두율(宋斗律)씨에게 원심과 달리 주요 혐의를 무죄로 인정하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또 서울고법은 26일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추징금 3000만원이 선고된 박광태(朴光泰) 광주시장에 대해 “뇌물을 줬다는 사람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박 시장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자백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강 법원장의 문제 제기는 이 같은 판결 경향에 대한 불만으로 풀이된다. 군사정권 시절 사소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에도 가차 없이 실형을 선고하던 법원이 이제 와서 시류(時流)에 영합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현금이 오가는 정치인 뇌물사건은 그 속성상 관련자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도 일부 진술이 부정확하다고 해서 당사자가 자백까지 한 사건에 무죄를 선고하는 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결국 대법관 후보 제청 과정에서도 나타났다는 의구심을 강 법원장은 품고 있는 듯하다. 그는 대법관 제청 자문위원회의 추천 과정 등 대법관 인사의 절차적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진보적 시민단체들이 이번 대법관 후보 제청 과정에 김영란(金英蘭) 대전고법 부장판사를 지지했던 것도 강 법원장의 ‘판결 공정성’ 문제 제기와 연관성이 있다는 견해가 많다.
하지만 강 법원장의 이런 지적은 사법시험 8기 후배인 김 부장판사가 대법관 후보로 제청된 직후에 나온 것이어서 그 의미가 반감된다는 지적도 있다. 대법관 후보에 올랐다가 후보로 제청되지 못한 사람이 이 일을 계기로 평소의 생각을 터뜨렸다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강 법원장이 김 부장판사의 대법관 후보 제청과 자신의 사의가 무관하다고 강조하며 일정한 선을 그은 것은 평생 법관으로서 봉직했던 사람의 법원에 대한 애정 표현으로 보인다.
어쨌든 현직 법원장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대법관 인선 절차와 판결의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고 나섬으로써 지난해 인사 파동에 휘말렸던 법원이 또다시 동요할지 주목된다.
▼강병섭 법원장은 누구▼
강병섭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은 선후배 사이에 신망이 두터워 유력한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곤 했다.
서울고등법원 판사와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친 강 법원장은 창원지방법원 법원장과 부산지방법원 법원장 등을 역임한 엘리트 법관이다. 그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버클리대 비교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강 법원장은 적극적으로 일선 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법원 조직의 인화와 복지를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전지성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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