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대법관 제청과 관련해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언론이 이것을 바로잡도록 도와야 한다”며 “한 사람의 대법관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다른 법관들이 불필요한 상처를 입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발언 내용을 전해 들은 한 중견 판사는 “일선 판사들이 느끼는 문제를 정확하게 대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강 법원장의 문제 제기는 대법관 선임 내용보다 대법관 선임 방식에 대한 것이다. 헌법상 대법관 임명 제청은 대법원장의 고유 권한. 이것은 또한 사법부 독립의 핵심 사항 중 하나다. 대부분의 판사들이 최고의 영예로 생각하고 있는 대법관 선임이 외부 입김에 의해 좌우된다면 판사들은 그 입김에 민감해질 우려가 있다. 따라서 대법관 선임에 대한 외부의 영향력 행사는 그 자체가 사법부 독립에 대한 훼손이다.
강 법원장이 지적한 ‘대법관 제청에 대한 잘못된 부분’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지적으로 보인다. 이번 대법관 임명 제청을 앞두고 시민단체와 재야 법조계는 앞 다퉈 후보를 추천하고 공개했다.
대법원도 법원 내부와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대법관제청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대법관 후보를 추천받았다. 공교롭게도 자문위에서 추천된 인사는 시민단체가 추천한 후보들과 거의 일치했고, 대법원장은 이들 중에서 대법관 후보를 임명 제청했다.
대법원은 대법관 선임 과정에서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겠다는 좋은 의도로 출발했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대법관 임명 제청이 궁극적으로 시민단체 등 외부의 의도대로 되었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이 과정에서 일부 판사들은 ‘불필요한 상처’를 입기도 했다. 강 법원장 본인을 포함해 많은 고위 중견 판사들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대법관후보로 1, 2차에 걸쳐 추천됐고 그 명단이 언론에 그대로 노출됐다. 물론 이들 중 1명을 제외한 나머지 판사들은 모두 고배를 마셨다.
다른 한편으로 이런 상황에서 최근 잇따라 ‘튀는 판결’들이 나왔다. 일부 판사들은 이들 판결이 대법관 임명제청에 관여한 외부 입김을 의식한 것은 아닌지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 전개로 일부 판사들과 법조인들의 위기의식이 커졌으며 강 법원장이 발언하게 된 배경도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강 법원장이 묵묵히 일하는 판사들의 심경을 대변하기 위해 십자가를 진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외국의 경우 법원의 판결에 대해 외부에서 이견을 밝히긴 해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다수 판사들은 “윗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
소장 판사들은 강 법원장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한 판사는 “무슨 위기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강 법원장의 판단이 성급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판사들이 줄줄이 사표 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법원 일부에서 제기된 ‘연쇄 사퇴론’을 일축했다.
강 법원장은 28일 “이미 19일에 사직서를 제출했고 철회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강 법원장은 ‘판결의 공정성에 대한 위기’ 발언과 관련해 “29년간의 판사 생활을 마치고 후배 법관들을 위해 용퇴하는 마당에 법원의 문제점 몇 가지를 지적하는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전지성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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