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동우/‘귀족노조’

  • 입력 2004년 7월 28일 19시 00분


최근 서울지하철 노조가 파업을 철회해 시민들이 큰 걱정을 덜었다. 그러나 대구지하철의 경우는 아직도 파업 중이며 여수의 LG칼텍스정유 노조의 파업도 마찬가지다. 대규모 공익사업장이나 대기업 노조의 파업은 국민들에게 큰 불편을 주거나 나라 경제에 타격을 준다는 점에서 때로는 쏟아지는 여론의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노사교섭이 제대로 안돼 노조가 최종적인 수단으로 파업을 택하는 것을 비난만 할 일은 아니다. 노동조합은 사회적 공익을 위해 결성된 조직체가 아니라 근로자의 권익을 옹호하고 쟁취하기 위해 설립된 조직이며 파업은 법이 인정하고 있는 노조의 정당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불편하다고 해서 특정 분야의 근로자들에게 부당한 근로조건과 저임금을 계속 참으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래서 노조의 정당하고 납득할 만한 파업에 대해서는 시민들이 어느정도 불편을 감내해야 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적지 않은 파업이 ‘정당하고 납득할 만한’ 파업의 범주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서울지하철 노조의 파업도 그 경우였다. 5조원에 가까운 누적적자를 안고 있는 사업장에서 또다시 근무시간을 줄이고 사람을 34%나 더 뽑아 달라는 노조의 요구조건이 알려지자 시민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LG칼텍스정유도 평균연봉이 6650만원이나 되는데도 노조는 큰 폭의 임금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파업 찬반투표가 진행 중인 대한항공의 경우는 흥미로운 케이스라고 해야 할 듯하다. 이 회사 조종사들은 기장이 월평균 60시간 근무에 평균 연봉 1억1000만원, 부기장은 8100만원을 받고 있다. 그런데 노조는 기본급과 비행수당을 각각 9.8%(기장의 경우 1250만원) 인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한항공 조종사들은 2000년 파업을 통해 편승근무자(다른 비행기를 조종할 근무자)들이 비행기의 승객석에 타고 가는 것도 근무시간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는 전 세계에서 이 회사가 유일한 경우라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노조가 아무리 조합원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한 조직이라지만 사회의 일반적 정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주위에서 수많은 서민들이 가계부도를 겪고 있고 엄청난 수의 대졸 청년실업자들이 거리를 헤매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이들의 요구는 마치 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이래서 귀족노조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요즘 민주노총 인터넷 홈페이지의 게시판에는 ‘제3노동조합설립 준비를 위한 준비모임’에 대한 소개글이 적지 않게 떠오르고 있다. 그들은 다수의 대기업노조와 지하철노조 조종사노조 교원노조 등을 포함하고 있는 민주노총은 더 이상 사회적 약자의 단체가 아니라 또 하나의 정치적 이익단체일 뿐이며 오히려 약자들을 밟고 자신들의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귀족노조의 지나친 이기주의에 식상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듯하다. 정치와 행정 기업경영 나아가 노조활동도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적절히 대응할 줄 알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진보를 표방하는 민주노총과 그 소속 노조들은 혹시 스스로가 자신들이 그렇게 비난했던 수구보수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일이다.

정동우 사회1부장·부국장급 fo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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