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 포석정(鮑石亭·사적 제1호)이 방치되고 있다. 돌로 만들어진 구불구불한 물길은 곳곳이 깨져 있고 주변에는 발굴 흔적이 어지럽게 놓여있다.
28일 오후 방학과 휴가철을 맞아 경주시 배동에 있는 포석정을 찾은 관광객들은 한결같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경기도에서 왔다는 한 가족은 “아이들과 경주 남산을 둘러보다 포석정은 꼭 가봐야겠기에 왔지만 무척 실망스럽다”며 “술잔을 띄우지는 못해도 물이라도 흘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관광객들도 마찬가지. 몇몇 관광객들은 “볼 게 없지만 기왕 왔으니 사진이나 찍고 가자”며 셔터를 눌렀다. 포석정은 연간 20만명 가량이 찾는다. 관광객들에게 포석정을 설명하는 경주시 문화유산해설사는 “관광객들이 대부분 포석정을 흐르는 물에 잔을 띄우는 곳으로 알고 있지만 정작 물 한방울 없어 아쉬워한다”며 “실제로 잔을 띄워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현재의 포석정 옆에 모형을 만들어 관광객들이 잔 띄우기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시도했으나 흐지부지 됐다.
문화재청은 1998년 모형 포석정을 추진했으나 물이 흘러들어가는 입구와 출구 등에 대한 정확한 고증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지금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다. 경주시는 이를 위해 6억원을 들여 인근의 터를 매입하기도 했다.
포석정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사람들이 정비한 이후 지금까지 별다른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원래의 모습이 어떠했는지조차 모르는 실정이다. 물이 흐르는 입구 쪽 돌은 300년가량 된 느티나무의 뿌리가 솟으면서 깨친 채 방치돼 있다.
포석정의 용도에 대해서도 새로운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문화재청 등 관련 기관의 공식적인 조사 역시 뒷전이다.
입구의 안내판에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927년 통일신라 경애왕이 잔치를 베풀고 놀다가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은 곳”으로 돼 있다.
그러나 당시 견훤이 신라에 들어온 때는 음력 11월로 한겨울이었으므로 포석정에서 임금이 술을 마시며 놀았다는 해석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는 주장이 많다.
경주시 문화재과 이채경(李埰炅) 학예연구사는 “포석정에 관한 기록은 주로 고려시대 문헌에 의존해 해석이 잘못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포석정은 신라 멸망과 관련된 중요한 유적이므로 정부 차원의 체계적 조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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