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在庸)씨에게 징역 2년 6월에 벌금 33억원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 김문석(金紋奭·사진) 부장판사는 “판결문에는 쓰기 어려운 이야기가 있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 부장판사는 대법관으로 제청된 김영란(金英蘭) 대전고법 부장판사의 동생이기도 하다. 다음은 일문일답.
―국민의 법감정을 고려할 때 양형이 가볍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최근의 조세포탈 사건에 대한 판결을 보면 대부분 집행유예다. 적지도 많지도 않게, 최대한 적합한 형을 주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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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 선고한 73억여원을 제외한 94억여원에 대한 계좌추적은….
“계좌추적 결과 중간에 끊겨 전 전 대통령 계좌와의 관련성을 찾아내지 못했다. 관련성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법원은 사실상 판단을 하지 않은 것이다.”
―세무당국은 유죄 선고한 73억원에 대해서만 증여세를 부과하게 되나?
“세무당국이 부과하는 증여세는 법원의 판단과는 다를 것이다. 세무당국은 무죄로 선고한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도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다.”
―73억여원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라면 추징할 수 있는 것인가?
“이는 세금과는 별개문제다. 검찰이 알아서 할 문제다.”
―재용씨는 외할버지가 20억원을 167억원으로 불린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특별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전 전 대통령에 대해 검찰이 직접 방문조사도 했는데….
“그 자료들을 다 봤는데 재용씨의 공소사실에 부합할 만한 진술 내용은 특별히 없었다.”
전지성기자 verso@donga.com
▼판결의미-전망▼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가 “결혼축의금을 외조부가 불려준 것”이라고 주장해왔던 액면가 167억원의 채권에 대해 법원이 “73억원은 그 자금 출처가 ‘전두환 비자금’으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국가가 이 돈에 대해 추징할 수 있을지, 또 전씨 비자금에 대한 검찰수사가 재개될지 주목된다.
▽판단의 근거와 의미=재판부가 전씨 비자금 중 일부가 차남 재용씨에 의해 관리, 사용됐다는 검찰의 주장을 인정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자금의 출처가 전재용의 결혼축의금’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금융자료 등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1988∼2000년 사이에 축의금 등 20억원을 120억원으로 불린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으며 △자금원이 결혼축의금이라면 어떻게 그 돈이 전씨 비자금 관리계좌에 들어갔는지 등이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73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자금에 대해서는 “출처가 명확하지 않아 조세포탈 범죄의 증명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씨 비자금인지 여부를 판단하지 않은 것이다.
▽전씨 비자금 추가 추징 가능할까=국가는 민사소송을 거쳐 추징할 수 있다. 다만 현재는 재용씨의 소유로 돼 있는 만큼 국가는 재용씨를 상대로 73억원에 대한 사해(詐害)행위 취소소송을 내야 한다. 여기서 승소해 전씨에게 소유권이 돌아가면 추징이 가능하다.
민법상 채권자 취소권은 취소원인을 안 날로부터 1년, 불법행위가 있었던 날로부터 5년 내에 행사해야 한다. 재용씨는 2000년 12월 증여받았기 때문에 특별한 다른 사정이 없는 한 소송이 가능하다.
73억원이 전씨에게 소유권이 돌아가 전씨가 추징금을 내더라도 재용씨의 ‘조세포탈죄’는 없어지지 않는다. 징역형과 벌금형을 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증여세도 모두 내야 한다. 증여가 취소됐다고 해서 과거의 증여행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씨 추징금 납부 실적=전씨는 1997년 4월 대법원 확정판결을 통해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받았으나, 지금껏 532억3650만원(24.1%)만 추징됐다.
이런 가운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전씨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괴자금 373억원(부인 이순자씨가 관리한 130억원 포함)을 추적하다 5월 이순자씨에게서 전씨의 추징금 대납형식으로 130억원(채권 102억원, 현금 및 수표 28억원)을 받았다.
또 전씨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이씨 친척 명의의 70억원도 추가로 대납받았다. 이씨가 200억원을 모두 대납함에 따라 전씨의 체납액은 1672억원으로 줄어들었다.
▽검찰 수사와 전씨 처리 전망=검찰은 73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괴자금 93억원의 원출처도 ‘전씨 비자금’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전씨가 비자금 은닉 혐의 등으로 검찰조사를 받을지 주목된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흐른 데다 수많은 차명계좌에 분산입금돼 검찰이 어느 정도나 더 자금출처를 밝혀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재용씨 사건 전말=재용씨는 2000년 12월 말 외조부 이규동씨에게서 167억원을 증여받고도 증여세 74억3800만원를 내지 않아 올 초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조수진기자 jin0619@donga.com
▼전재용씨 사건 일지▼
▽2000년 12월=액면가 73억여원의 국민주택채권 1013장을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증여받음.
▽2001년 9월=노숙자 김모씨 명의로 차명계좌를 개설해 130억여원 상당의 채권을 옮겨 놓음.
▽2002년 6월=증권사 직원 이모씨를 통해 30억원 상당의 채권 추가로 옮겨 놓음.
▽2004년 2월 10일=괴자금 167억여원에 대한 증여세 71억원 포탈 혐의로 구속 수감.
▽2004년 5월 12일=검찰, 재용씨에게 징역 5년에 벌금 150억원 구형.
▽2004년 5월 17일=전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가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추징금 대납 형식으로 130억원 납부.
▽2004년 5월 24일=재판부는 검찰에 167억여원의 증여자를 외할아버지 이규동씨에서 전 전 대통령으로 바꾸도록 공소사실 변경을 요구.
▽2004년 7월 30일=재판부는 167억여원 가운데 73억여원을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인정하고 재용씨에게 징역 2년6월에 벌금 33억원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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