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 피살]“범죄에 당하고 순직보상 4천만원이라니”

  • 입력 2004년 8월 2일 19시 15분


《서울 도심에서 성폭행사건 피의자를 검거하려던 경찰관 2명이 피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사건이 발생해 시민들을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숨진 두 경찰관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사명감을 갖고 묵묵히 맡은 일을 해 오던 이들이어서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권력 무시 △경찰관 총기 사용에 대한 과도한 제한 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숨진 경찰관 누구=▽숨진 경찰관 누구=피의자 이학만씨의 흉기에 숨진 심재호(沈在浩·32) 경사와 이재현(李在賢·27) 순경은 성실하고 듬직한 경찰이었다. 서울 서부경찰서 한상일 강력계장은 “둘 다 똑똑하고 열정적인 형사였다”며 “제대로 뜻을 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정말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심 경사는 1995년 2월 순경 공채로 경찰에 들어왔다. 2000년부터 서울 마포서 형사계에서 2년간 근무했고 3회의 지방청장 표창, 9회의 서장급 표창을 받은 우수한 형사였다. 올해 2월 29일 서부서에 배속됐고 3월 경사로 진급했다. 한 동료는 “피해자를 대할 때 항상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했다”고 말했다.

이 순경은 지난해 6월 순경 공채로 들어와 심 경사와 같은 날부터 서부서에서 근무했다.

폭행사건 피의자를 붙잡으려다 흉기에 찔려 숨진 심재호 경사의 유족들이 2일 새벽 서울시립은평병원 병실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오후 서울 송파구 가락동 국립경찰병원 영안실에 합동 분향소를 마련했다.- 변영욱기자

동료 경찰관들은 “이 순경은 키 187cm에 몸무게 97kg으로 듬직한 강력반 형사였다”며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해 선배들이 귀여워했다”고 말했다.

▽절규하는 유족들=2일 오후 두 경찰관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송파구 가락동 국립경찰병원 장례식장.

미혼인 이 순경의 아버지(56)는 아들의 영정을 끌어안으며 “아들을 뒤따라가겠다”며 절규했고, 어머니 유모씨(54)는 “아들을 돌려 달라”며 흐느꼈다. 이 순경의 사촌형 이모씨(47)는 “어렸을 때부터 재현이 꿈이 경찰이었다”며 “워낙 과묵하고 효자여서 부모님 가슴이 더 멜 것”이라고 말했다.

심 경사의 부인 황모씨(34)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눈물만 흘렸다. 이들은 2000년 결혼해 네 살짜리 아들과 8개월 된 딸을 뒀다.

심 경사의 장모 김모씨(64)는 “우리 사위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며 “지금까지 살면서 우리 딸 눈물 한번 흘리게 한 적이 없었는데 무슨 날벼락이냐”며 오열했다.

▽도전받는 공권력=이번 사건은 경찰 공권력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는 지적이다.

일선 경찰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공권력이 이처럼 공격받는다면 범인 검거뿐 아니라 경찰관의 신변보호 차원에서라도 경찰의 총기 사용 규제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찰의 공무집행을 방해하는 사례는 해마다 늘어나는 실정.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경찰에 검거된 사례는 2000년 5279건에서 △2001년 6575건 △2002년 7477건 △2003년 7594건 △2004년 7월까지 4492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서울의 한 경찰관은 “범죄 용의자가 반항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제지하면 과잉대응이나 공권력 남용이라며 민원을 제기하기 때문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일선 경찰서 강력반의 한 형사는 “용의자 검거시 총을 휴대하기 위해서는 서장에게 서면으로 결재를 받아야 하고, 한번이라도 총을 쏘면 바로 상부의 감찰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총기 사용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경찰대 표창원 교수는 “외국의 경우처럼 총기 사용에 대한 구체적인 절차를 만들고, 이를 준수했을 경우에는 결과와 관계없이 그 책임을 묻지 않는 풍토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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