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뒷거래 기승…정보화촉진기금 비리 일파만파

  • 입력 2004년 8월 5일 18시 06분


《“기금 출연사업 지원을 신청했지만 2년 연속 퇴짜를 맞았다. 매번 기술력이 형편없는 기업에 밀렸다. 관련 공무원에 줄을 대지 않으면 아무리 기술력이 우수한 업체도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 이듬해에는 포기했다.”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A사장(42)의 경험담은 벤처 업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출연사업 심사위원 경험이 있는 대학교수 B씨는 “공무원과 담당직원, 심사위원과 안면이 있는 기업 위주로 선발이 이뤄지다 보니 기술심사는 뒷전”이라고 말했다. 정보화촉진기금의 운영 실태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10조원대의 정보화촉진기금을 둘러싼 비리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감사원 감사를 통해 기금 운영 비리가 사실로 드러난 데 이어 검찰이 수사 확대 움직임을 보이는 등 초대형 스캔들로 비화될 조짐이다.》

▽기금 비리 왜 터졌나=정보화촉진기금은 수조원대의 기금을 집행하면서도 적절한 감시나 견제 장치가 턱없이 부족했다. 정통부는 그동안 기금을 정부 예산에 통합하라는 감사원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정보기술(IT)산업의 특수성을 들어 독자적인 예산 집행권을 고집해 왔다.

정보화촉진기금은 ‘눈먼 돈’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관련 공무원과 산하기관 주변에는 이를 노리는 기업인들이 들끓었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 산하기관 직원, 심사위원 등이 로비의 대상이 되고 특정 업체에 기금을 지원하는 대가로 주식이나 금품을 받는 뒷거래가 횡행했다는 지적이다.

이번 감사 결과 정보통신부와 산하 기관들은 실제로 기금을 제 돈인 양 주물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통부와 산하기관 직원이 관련 업체 주식을 헐값에 사들여 수억원씩 차익을 챙기는 등 각종 비리도 판을 쳤다. 2억원을 지원 받고 사업을 포기했던 기업이 이듬해 3억원을 다시 지원받은 뒤 부도를 낸 사례도 있었다.

▽비리 재발을 막으려면?=정통부는 이번 사태가 터지자 기금운영 개선방안을 서둘러 발표했다. 정통부와 산하기관의 재산등록 대상자를 확대하고 특정 업체에 지원이 중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출연지원 총량제’를 도입한다는 것 등이 그 내용이다.

3일에는 진대제(陳大濟) 장관이 직접 기금 비리를 사과하면서 “비리 연루자를 엄중처벌하고 직원들에 대한 윤리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통부는 “이번 비리는 4∼5년 전의 일로 2002년에 덮어뒀던 사건이 다시 불거진 것일 뿐 이후 새로 드러난 것은 없다”고 밝혀 의혹을 축소하는 데 급급해하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기금 예산안에 대한 사전심의 기능 강화 △정부 예산 내 기금 편입 △벤처기업 기술평가 체계 보완 △기금 지원 기업에 대한 장기 관리 방안 등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전자통신연구원 등 정부출연연구기관에 대한 감사 체계 강화도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정보화촉진기금:

정보화 사업 추진과 IT산업 육성을 위해 1996년 처음 조성됐다. 통신업체들이 사업권의 대가로 내는 출연금과 정부 출연금이 재원. 작년말 기준으로 그동안 10조2873억원이 조성돼 7조4363억원이 사용되고 2조8510억원 정도가 남아 있다. 세계적인 IT 인프라 구축과 함께 메모리반도체, 전자교환기,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기술 개발 등은 정보화촉진기금의 성과로 꼽힌다.

김태한기자 free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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