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인질범 검거 매뉴얼’에 따르면 경찰이 인질범을 검거할 때는 신속하고 은밀하게 현장에 출동한 뒤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설득조 체포조 등을 차례로 구성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만에 하나 피해를 볼지 모르는 인질을 보호하기 위한 절차.
그러나 경찰이 보여 준 대응은 이런 수칙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이날 오후 7시경 서울 강서구 방화동 H빌라 2층 복도 계단. 이씨에게 인질로 잡혀 있던 집주인 박모씨(49·여)는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이웃 주민 수십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어 놓은 베란다 문으로 들어왔으면 쉽게 잡았을 텐데 왜 현관으로 와서 소동을 부렸느냐”며 경찰에 거칠게 항의했다. “인질의 목숨에 대해 그렇게 무신경할 수 있느냐”는 항변이었다.
이웃 주민들도 “경찰이 사이렌을 울리며 접근하는 바람에 놀라 밖으로 나왔다”며 “경찰이 초인종을 누르면서 ‘빨리 나오라’고 소리쳤고 반응이 없자 문을 발로 걷어차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인질범 검거 매뉴얼은 강력사건 수사의 필수 교육 과정. 이 때문에 ‘매뉴얼을 모를 리 없는 경찰이 용의자 검거에 눈이 멀어 이를 무시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것.
이에 대해 경찰은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모든 경우에 반드시 매뉴얼대로 처리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며 어처구니없는 해명을 했다. 한 경찰 간부는 “당장 시간이 급한데 경험이 부족한 지구대 경찰관을 제쳐두고, 베테랑 경찰을 따로 뽑아 출동시킬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사후에라도 ‘인질 보호에 부족함이 있었다’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정세진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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