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는 그동안 다른 약품에 대해서는 FDA의 결정을 신속히 반영해 온 식약청이 왜 유독 PPA에 대해서는 자체 연구를 벌여 판매금지 결정까지 약 4년의 시간을 끌었을까 하는 점이다.
▽왜 FDA 경고치를 외면했을까=식약청은 FDA가 PPA 함유 의약품 판매를 금지시킨 지 8개월 뒤인 2001년 7월 PPA 함유 의약품 가운데 하루 최대 복용량이 100mg을 초과하는 의약품에 대해서만 생산 및 판매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 결과 하루 최대 복용량이 100mg 이하인 감기약은 계속 생산·판매할 수 있도록 길을 터놓은 것.
이 기준치는 “PPA를 하루 75mg 이상 복용할 경우 뇌중풍 가능성이 10배 이상 증가한다”는 FDA의 경고치에 비해 25mg이나 높은 것이다.
이에 대해 식약청 관계자는 12일 “일본과 영국 등에서 100mg 기준이 사용되고 있어 이를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FDA의 발표 나흘 뒤인 2000년 11월 10일 한국제약협회가 “판매중지 결정은 부작용 연구조사를 먼저 실시한 뒤 신중하게 처리해 달라”고 식약청에 건의한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당시 콘택600(유한양행)의 하루 최대 PPA 복용량이 80mg인 것을 비롯해 국내에서 생산되는 감기약 대부분의 PPA 함유량은 70mg에서 100mg 이내였다.
결과적으로 PPA 성분 허용 기준을 75mg 대신 100mg 이하로 정한 식약청의 조치로 제약업체들은 PPA 함유 감기약을 계속 만들 수 있었다.
▽PPA는 자체 연구, 다른 약품은 FDA 결정 즉각 수용=식약청은 FDA의 조치를 수용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PPA 성분의 위해성에 대한 연구조사를 실시한 데 대해 “외국 기관의 결정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주체적인 근거를 갖고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식약청이 의약품 위해성에 대한 공신력 있는 선진국 기관의 결정을 신속히 받아들이지 않고 자체적으로 연구조사에 들어간 것은 지금까지 PPA의 경우가 유일하다.
비염 치료제인 테르페나딘은 심장부정맥을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 FDA가 1998년 회수 조치를 취하자 식약청은 자체 연구조사 없이 2000년 1월 동일한 조치를 취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소화제 성분인 시사프리드가 심장발작 등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보고에 따라 2000년 초 FDA에 의해 처방제한 조치가 내려지자 식약청은 같은 해 7월 1차 선택제로 처방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이에 대해 식약청 관계자는 “테르페나딘과 시사프리드 같은 약품은 감기약만큼 광범위하게 사용되지 않아 자체 연구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의약품의 효용성은 국가마다 다른 만큼 일률적인 잣대로 판단하기 힘든 점이 많다”고 말했다.
‘건강 사회를 위한 약사회’ 천문호(千汶浩) 회장은 “(식약청의 설명을 인정한다 해도) 외국에서 의약품 안전성에 대한 조치가 있을 경우 이를 즉각 받아들일지, 아니면 시간을 갖고 자체 연구를 할지에 대한 원칙과 시스템이 없다면 혼선이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