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군이 떠난 뒤 궁궐 앞에 버티고 선 수문장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눈썹 하나 까닥이지 않는다. 영락없는 마네킹이다.
“수문장이 눈을 깜박거리거나 몸을 움직이면 위엄이 떨어지기 때문에 관광객이 장난쳐도 절대 움직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3년째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돈화문을 ‘꿋꿋이 지키고 있는’ 수문장 노성오씨(38).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연중 하루도 쉬지 않는다.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더위에 그가 껴입은 윗옷만 네 가지.
때로 노씨가 진짜 마네킹인 줄 알고 수염을 당기거나 손가락으로 허리를 꾹꾹 찌르고 꼬집어보는 관광객도 있다. 며칠 전엔 손가락에 콧구멍을 찔리는 ‘봉변’도 당했다. 물론 고생한다고 땀을 닦아 주거나 시원한 음료수를 가져오는 관광객도 많다. 사진을 같이 찍은 뒤 팁을 주려고 하는 외국 관광객도 있다. 물론 팁은 받지 않는다.
노씨는 방송국 단역배우 출신. 사극에도 자주 출연했다. 그런 연유로 2001년 서울시에서 수문장을 뽑을 때 주변 사람들의 권유를 받아 단역에서 ‘주역’으로 변신했다.
힘들지 않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노씨는 “외국 관광객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한국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대한민국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얼굴이라고 감히 자부합니다. 외국 관광객들의 선호도 조사에서도 수문장 행사가 가장 먼저 뽑히지요. 영국에 ‘근위병 교대 의식’이 있듯이 한국에는 수문장 교대 의식이 있다는 사실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수문장 일로 하루를 거의 다 보내는 그의 봉급은 일당 5만원 정도. 밤에는 친구와 노점상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빡빡하게 살다보니 장가가는 시기도 놓쳤다.
노씨는 “수문장과의 사진 촬영 때 관광객들이 서로 먼저 찍기 위해 몰려들다 말다툼을 벌일 때는 안타깝다”며 “줄을 서서 찍으면 서로 얼굴 붉힐 일도 없을 것”이라고 관광객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노씨는 “수문장 교대 의식은 일종의 무형문화재이므로 이를 구경하는 에티켓이 필요하다”며 “일부 관광객들이 행사에 사용되는 북이나 칼 깃발 창 등을 뽑아보기도 하는데 눈으로만 봐 달라”고 당부했다. 수문장 교대 의식은 오전 10시반에 한 차례, 오후 2시부터 세 차례 등 하루에 총 네 차례 반복한다.
이진한기자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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