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 시작돼 신랑 신부 입장이 끝났는데 갑자기 사회자가 장학금 전달식을 하겠단다. 결혼식에서 웬 장학금 전달식? 경험이 부족한 사회자가 말실수를 했나보다 하며 의아해 하는데 혼주가 나가더니 마이크를 잡는다. “여러분이 오늘 내신 축의금 전액을 ○○장학회에 기부하겠다.” 혼주는 그 자리에서 그 장학회 관계자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하객들은 혼주의 돌출 행동에 놀라면서도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 장학회와 혼주 사이에는 애틋한 사연이 있었다. 20여년 전 한 청년이 대학의 같은 학과 친구들과 함께 낚시를 갔다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친구들을 무척 사랑했던 꿈 많던 젊은이였다고 한다. 청년의 부모는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서울의 사업을 모두 정리해 시골로 내려가 젖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 가족, 친구들과 함께 죽은 아들을 기리는 작은 장학회를 만들었다. 이 장학회는 지난 20여년간 아들의 모교 재학생 중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 70여명에게 학비를 지원해 왔다.
이날 결혼식의 혼주는 20여년 전 숨진 청년의 친형이었다. 결국 조카의 결혼축의금이 삼촌을 추념하는 장학회에 기증된 셈이다. 결혼식에 앞서 열린 가족회의에서 축의금을 보람 있게 쓸 방법이 없을까 논의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이처럼 아름다운 드라마가 또 있을까. 여러 결혼식에 다녀봤지만 축의금을 낸 뒤 이렇게 가슴이 뿌듯해보긴 처음이었다. 메마른 세태에 잔잔한 감동을 가득 안겨준 매우 뜻 깊은 결혼식이었다.
백형찬 서울예술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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