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이른바 ‘녹화사업’ 당시 고문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한희철씨(당시 서울대 4학년)의 아버지 한상훈씨(76)는 아들이 죽은 지 21년 만에 대신 받게 된 졸업장 생각에 말을 잇지 못했다.
한씨는 “지난주 서울대로부터 숨진 아들에게 27일 명예졸업장을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아내와 요즘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넘었지만 이들 부부는 아직 아들의 방을 마련해 두고 있다. 유품은 아들의 가묘에 묻거나 화장할 때 같이 소각해 남은 것이라곤 사진 한 장이 전부지만 아침저녁으로 그 방에 들어가 ‘별일 없는지’ 살피곤 한다.
어머니 김인련씨(72)는 “졸업장을 받으면 액자에 넣어 아들의 사진 옆에 걸어둬야겠다”며 “입학증을 받아오던 20여년 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희철씨는 기계설계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2년 운동권 학생들을 강제 징집해 프락치로 활용하던 이른바 군 ‘녹화사업’에 투입됐다가 고문 등을 견디다 못해 1년 만에 자살했다.
이 사실은 지난해 4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밝혀져 한씨는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됐다.
아버지 한씨는 “아들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밝히는 데 꼬박 8년이 걸렸다”며 “죽기 전에 아들의 명예가 회복돼 이제 여한이 없다”며 말했다.
한씨는 “서울대가 망자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들었다”며 “뒤늦게나마 학교에서 아들의 존재를 인정해 줘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김재영기자 jaykim@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