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해는 천안 단국대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했다. 첫날 강의실에 들어가니 300명쯤 새까맣게 앉아 있었다. 강단은 왜 그렇게 높던지,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불러도 불러도 끝이 없는 출석부를 부여잡고 졸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수강 인원에 대해 누가 귀띔이라도 해줬다면 그렇게 당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백명 수강생… 쥐꼬리 강의료▼
서울에서 천안까지 차라도 밀리면 왕복 3시간 거리였다. 일주일에 2시간 강의하고 받은 강의료가 거마비를 포함해서 한달에 채 20만원이 안 되었다. 그런 대우가 황당했지만 당시 백수나 다름없던 나로서는 던져주는 대로 덥석 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학교를 오가는 데 투자한 시간이 결코 억울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때 생애 첫 장편소설을 쓰고 있었는데, 고속도로를 오가는 동안 수많은 영감에 사로잡혀 지루한 줄도 몰랐다. 두 번째 학기가 시작할 때쯤 그 작품으로 등단했으니, 그것이 내 인생에서는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드라이브 코스였다.
그 후 10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소설을 쓰고 있고, 4년 전부터는 연세대에 출강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강사인 내 처지는 변한 게 없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여기서도 역시 대형 강의다. 수강인원이 200명이 넘으면 그건 이미 학생이 아니라 군중이다.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비해 강의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코 성립될 수 없는 액수다. 원고료 없이 강사료만 가지고 생활했다면 예전에 목을 매거나 사생결단을 냈을 것이다.
강단에 서는 게 전혀 보람 없다는 것은 아니다. 미술사에 관련된 과목들을 다루다보니 쌓이는 것도 있고 싱싱한 에너지를 계속 충전 받는 느낌이다. 그러나 산더미처럼 쌓인 시험지와 리포트를 채점할 때면 ‘이건 좀 심각하게 많군’ 하며 한숨을 푹푹 내쉴 수밖에 없다.
요즘에는 학기말 우울증을 앓고 있다. 학생들이 작성한 강의평가서 때문이다. 새겨들을 건 새겨듣고 흘려들을 건 흘려들을 수밖에 없지만, ‘강사가 화를 낸다’고 비아냥거린 문장은 정말이지 내 속을 긁어놓았다. 강의를 못한다는 불만이 없어 다행이긴 한데 아니, 강사는 화도 못 낸다는 말인가. ‘교양과목 치고 너무 빡세다’고 적어낸 학생들에게도 할 말이 있다. 한 학기에 시험 두 번, 리포트 한 개. 이게 정말로 ‘빡센’ 것인가. 다른 선생들은 어떤 식으로 강의를 하기에 그런 얘기가 나오는지 정말 궁금하다.
나는 미국에서 10년 동안 유학을 했다. 대학교 때 한 교수가 “이 강의는 한 학기 등록금을 수업시간 수로 나눌 때 대략 얼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어렵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에 다니던 내게는 정말 실감나는 말이었다. 간혹 휴강이라도 하면 본전 생각이 날 수밖에 없었다. 연세대만 해도 ‘등록금 인상 결사반대’ 같은 현수막이 곧잘 내걸린다. 그렇게 등록금은 아까워하면서 왜 휴강하자는 말이 나오는지, 어떻게 공부 좀 살살 가르치라는 말이 나오는지 황당할 뿐이다.
▼한학기 리포트1개가 “빡세다”▼
미국과 한국 교육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할지 모른다. 한국에서는 대학생이 되려면 지옥 같은 경쟁을 거쳐야 한다. 그러니 대학에 와서는 설렁설렁 놀아도 된다고? 입시 때문에 고등학교 시절을 망친 죄를 왜 대학이 뒤집어써야 한단 말인가. 여기가 하버드나 예일이었다면 ‘빡세다’는 말이 그렇게 쉽게 나왔겠는가.
요즘 대학생들이 완전히 절망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80년대 대학생들은 성적을 잘 받는 게 창피한 일이었다는데, 그에 비하면 열심히 공부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한 경쟁시대에 실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한국에서 못하던 공부는 외국 나가서도 못 쫓아간다. 괜히 한국대학 수준 운운하지 말고 자기 공부부터 철저히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물론 공부하지 않고도 잘살 수 있는 사람은 예외지만 말이다.
김미진 객원논설위원·소설가 usedream@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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