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논술에서는 시사(時事)적인 주제들도 종종 출제된다. 대개 수험생들은 관련 기사를 추려내고 정리하는 식으로 이에 대비하곤 한다. 하지만 출제자들이 원하는 답은 ‘이슈 브리핑’이 아니다. 평가의 초점은, 문제의 핵심을 드러내고 대안을 제시하기까지의 과정에 있다. 지금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사건들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슈의 역사적 맥락을 짚을 수 있다면 문제의 본질에 더욱 깊숙이 다가갈 수 있겠다.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에는 행정수도 이전, 청계천 복원 등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는 박정희 정권 시절 오랜 기간 서울시 기획관리관, 도시계획국장 등을 지냈다.
굵직한 도시계획에는 나름의 시대 논리가 있는 법이다. 청계천 복원을 예로 들어보자. 조선시대의 ‘개천(開川)’이란 하수를 내보내던 인공 하천을 일컫는 말이었다. 여러 차례의 준설 기록이 보여주듯, 청계천도 한때는 ‘한양의 하수도’에 불과했다. 60년대 군사정권은 청계천 복개 공사를 통해 “일 잘 한다”는 찬사를 받았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서울에 얽힌 방대한 사연이 소개돼 있다. 4대문 안의 수많은 지하보도가 실은 방공호로 쓰기 위해 건설되었다는 것, 아스팔트로 흉물스럽던 과거의 여의도 광장은 전시에 비행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는 것 등등. 이를 통해 독자는 그 시대의 눈으로 현재의 문제를 이해하는 혜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상황 논리보다 미래를 보는 식견이 더 중요한 사안들이 훨씬 많다. 70년대 초 서울시는 도로 주차장 공원녹지라는 ‘3대 공간 확보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당시 서울시장의 최대 역점 사안은 도로와 주차장 건설.
그러나 저자는 도심의 주차장이 늘고 도로가 넓어질수록 교통 혼잡은 더 심해질 뿐이라고 역설했다. 오히려 차로 도시중심부에 들어가는 것을 더 어렵게 하고 대중교통을 확대해야만 교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금의 서울시 교통정책은 이 같은 소신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 우리 역사 바로잡기 등 ‘시사 논제 거리’가 유난히 많은 요즘이다. 하지만 지금의 수많은 난제들은 이미 과거에도 있었다. 신행정수도 계획은 이미 70년대에 무산됐지만 그 결과 계룡대, 청주국제공항 같은 파생물을 낳았다. 지금의 논쟁거리들은 우리 사회에 또 어떤 흔적을 남길까? 이 책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학교 도서관 총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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